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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북방한계선 아래 바다를 내지르는 뱃사람들

등록 2017-01-10 16:29수정 2017-01-10 22:22

서울 강남 스페이스22에 차린 장공순 작가 사진전
북방한계선 아래 강원도 고성 어부들의 애환 담아
장공순의 ‘저도어장’ 근작. 통제선의 점호가 끝난 뒤 저도 어장의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달리는 고깃배들의 모습을 포착했다.
장공순의 ‘저도어장’ 근작. 통제선의 점호가 끝난 뒤 저도 어장의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달리는 고깃배들의 모습을 포착했다.
작은 고깃배들이 바다를 내지른다. 돌고래 떼처럼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선 채로 조종간 잡고 가속을 올리는 어부들 몰골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품새만으로도 신나고 들떠 있는 감정이 전해져온다. 그렇게 득의만만해서 달려가는 곳은 어디일까.

서울 강남역 근처 사진공간 스페이스22의 개인전에서 만나게 되는 사진가 장공순(54)씨 근작들은 남북간 해상 대치선 노릇을 하는 북방한계선(NLL) 바로 아래 강원도 고성 어장의 현장들을 담는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고성군 현내면 산 60번지에 있는 작은 섬 저도(돼지섬) 부근의 해역이다. 해군 경비선 점호를 받으며 일정 시기 지역 어선들에게만 개방되는 바다다. 개방일이 되면 어장으로 가려고 질주하는 배 떼들이 진풍경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하얀 물살을 끌며 경주하듯 달리는 고깃배와 잠수부, 해녀들을 태운 뱃전과 포구의 이모저모를 박진감 있게 포착하면서 삶터이자 분단·망향의 한으로 뒤발된 이곳 바다의 양가성을 흑백필름으로 드러낸다. 멀리 금강산 일만이천봉 동쪽 끝 낙타봉을 배경으로 해군통제선 엄호 아래 작업하는 고깃배들이 겹쳐져 나오는 사진은 다른 작가들이 찍을 수 없는 조망과 구도가 신선하다. 자연과 인간살이가 평화롭게 어우러진 정경이지만, 엔엘엘에서 1㎞ 떨어진 북위 38도 35분선이란 부제를 읽으면, 철벽처럼 엄존하는 분단 대치의 현실을 더욱 가파르게 실감하게 된다.

뱃전에서 난롯불을 쬐거나 더운물을 끓여 끼얹으며 혹한을 견디는 고성 해녀들, 둔중한 잠수헬멧을 쓰고 입수를 기다리는 탈북자, 과거 고문의 상처를 안고 사는 납북 귀환 어부 등이 순간순간의 스냅풍 구도로 담겨 전해져 오는 연작들은 교감하는 힘으로 넘친다. 작가 자신이 고성군 죽왕수협에서 일하는 생활인이고, 청진에서 동해북부선 열차를 타고 일제강점기 남하한 실향민 자손이다. 장소의 미감이나 앵글의 구도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단의 바다에서 밥줄을 걸고 사투하는 사람들의 진실을 누구보다도 현장에서 진솔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내력이 작업의 열정과 만나 빚어낸 결실일 터다. 동료 사진가 엄상빈씨는 “동해북부선과 동해바다, 실향민들을 죽 훑어온 그의 작업은 어깨가 무거워지는 이야기들”이라고 말한다. 도서출판 눈빛에서 근작 사진집 <저도어장>도 나왔다. 전시 25일까지. (02)3469-0822.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스페이스22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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