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의 ‘영건…’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기획 전시실 일부의 모습. 안쪽 정면에 19세기 경복궁 중건 당시 근정전 지붕 공포에 들어갔던 4개 층단의 대형부재인 살미가 보인다.
인류사에서 권력자들이 구축한 거대 건축물은 이중적인 얼굴을 갖고 있다. 통치자와 지배계층이 투영한 사상, 이념의 기념비적 산물이면서도, 그 이면에는 끌려나가 부역한 민중의 고통 어린 자취가 서려 있게 마련이다.
우리 전통 건축의 고갱이라는 조선 궁궐 건축도 다르지 않다. 경복궁을 창건한 1대 태조부터 덕수궁을 근대 서울의 중심으로 구상한 26대 고종에 이르기까지 조선 임금들은 대부분 ‘건축군주’들이었다. 궁궐 신축, 개보수 등을 유교 이념을 실체로 드러내는 통치 행위로 중시했던 까닭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을 짓고 수시로 확장해 도읍 서울을 굴지의 궁궐도시로 만들었다.
하지만 군주들은 궁궐 역사 때마다 백성을 동원해 노역과 자재공출을 강요했다. 그뿐만 아니라 무리한 궁궐 건축 사업은 정권의 위기와 몰락을 불렀다. 경희궁 건립을 강행하다 인조반정의 빌미를 준 광해군이나 경복궁 중건을 위해 화폐 발행을 남발하다 몰락을 자초한 흥선대원군이 그러하다.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영건(營建), 조선 궁궐을 짓다’는 세계 유례없이 자연지세에 맞춰 독특한 공간적 권위를 구축한 조선 궁궐 건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경복궁 전각 기둥 위의 공포 부재인 소 혀 모양의 살미 모형으로 들머리를 수놓은 전시장은 1, 2부로 나뉘어 창덕궁, 덕수궁 등 전각들을 짓는 과정을 담은 기록문헌과 공사용 공구들, 단청 부재, 도배지, 궁궐 그림 등 180여점의 유물을 내놓았다.
전시 제목인 영건은 국가운영 핵심인 궁궐을 짓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1부가 이 영건의 주요 과정과 관련 유물을 다룬다. 우선 관객은 조선의 궁궐 건축에 설계부터 세부 공정까지 철저한 기록이 따라붙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주의 근원인 삼재(三才)와 주변 팔괘 등을 반영해 경복궁 중건 때 경회루 건축을 구상했음을 보여주는 <경회루 전도>(1866)와 1833년 창덕궁 전각의 재건 과정을 담은 <창덕궁 영건도감 의궤>, 1904~07년 덕수궁 영건 공사의 장인 작업일지 등을 정리한 <장역기철> 등이 이를 일러준다. 수십년 전 지은 관공서 건축물의 세부적인 기록도 찾기 힘든 후대인의 나태와 무지를 부끄럽게 하는 유물들이다.
궁궐 영건 때 기초공사에 썼던 목달고(광주시립민속박물관 소장). 땅의 흙, 자갈 등을 다지기 위한 전통 공사도구다.
사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공사용구나 전각을 장식한 공포, 벽지 같은 현장 유물들이 더욱 살가운 구경감으로 다가올 듯하다. 두 사람이 자루를 붙들고 땅과 자갈을 다지는 ‘목달고’‘석달고’ 같은 덩어리 공구를 비롯해 다기한 쓰임새의 전통 대패들, 투박하지만 이음 구실에 충실한 큰 철못, 눈금자 등이 옛 장인들의 흔적을 드러낸다. 운현궁, 창덕궁, 덕수궁 각 방벽에 발랐던 도배지 문양들의 미감은 감상의 또다른 별미다. 용과 봉황, 박쥐문 같은 곡선 문양과 이 문양들의 기하학적 배치가 조화를 이루어 한국 궁궐 건축의 독창적인 품격을 넉넉히 깨닫도록 해준다.
전시는 궁궐 공사의 과정을 한자리에 처음 공개해 조선 궁궐의 특장을 눈에 잡히게 보여주지만, 콘텐츠를 배치한 얼개는 적잖은 맹점을 노출하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1부 기획전시실과 근정전 축소 모형과 상량문 등을 놓은 2부 조선의 궁궐실이 따로 떨어져 2부 내용은 지나치기 쉽다. 옛 공정 등을 재현한 대형 영상이나 입체 모형 등이 거의 없어 진열장 문헌, 유물 훑어보기에만 치중해야 하며, 궁궐 노역에 끌려온 장인과 백성들의 고뇌와 애환이 여러 문헌기록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잘 부각되지 않은 점도 헛헛하게 다가온다.
이 박물관 기획전시실은 협소한 공간 탓에 종종 전시 콘텐츠를 분산시킬 수밖에 없고 내부 동선이 혼돈스럽게 꼬인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전시실 공간을 확충하는 리모델링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전시는 19일까지. (02)3701-75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