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꽃바다였다, 지금은 분단된 이 땅은

등록 2017-02-14 16:04수정 2017-02-14 19:08

송창 작가의 첫 미술관 전시 ‘잊혀진 풍경’
꽃·쇠못 접목한 스타일에 몽환적 색감 주목
“영상·설치작품과 사회적 현실로 작업 확장”
2015년 그린 대작 <의주로> 앞에서 그림을 설명하고 있는 송창 작가. 지금은 비무장지대여서 주민과 군인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의주행 1번 국도의 정경을 아련한 꽃무더기를 붙여 담은 작품이다. 작가는 “분단은 곧 죽음이다. 우리가 잊고 있거나 일부러 외면해온 분단의 현실을 앞으로 다양한 형식과 고민을 통해 더욱 확장해 풀어내고 싶다”고 말한다.
2015년 그린 대작 <의주로> 앞에서 그림을 설명하고 있는 송창 작가. 지금은 비무장지대여서 주민과 군인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의주행 1번 국도의 정경을 아련한 꽃무더기를 붙여 담은 작품이다. 작가는 “분단은 곧 죽음이다. 우리가 잊고 있거나 일부러 외면해온 분단의 현실을 앞으로 다양한 형식과 고민을 통해 더욱 확장해 풀어내고 싶다”고 말한다.
꽃바다였다. 이젠 끊겨버린 평북 의주행 1번 국도 한 자락도, 철원과 연천 비무장지대의 논두렁도, 한국전쟁 때 숨진 병사들의 유해를 불태운 화장로 탑도 모두 천조각 꽃들로 뒤덮였다. 꽃들 사이사이로 인골과 날카로운 쇠못의 자취들이 번득거린다. 냉기 어린 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한 대기와 하늘 아래 펼쳐진 분단의 땅 위에 그렇게 봄은 음울함과 희망이 뒤섞인 채 스며들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래 30여년째 분단의 풍경을 화폭에 그려온 송창(65) 작가의 근작들은 따듯하면서도 몽환적인 색감과 꽃, 마끈 등의 매체를 접붙인 독특한 형식적 시도로 눈에 감겨왔다. 지난 10일부터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에서 개막한 그의 첫 미술관 전시인 ‘송창-잊혀진 풍경’은 삭막한 분단 풍경으로 대변되었던 송창 특유의 화풍이 최근 새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는 징표로 비친다.

“분단은 60년 이상 우리 삶을 옥죄며 엄존하지만, 망각되고 있습니다. 분단은 전쟁을 예비한다는 점에서 해소시키지 않는 한 끊임없이 반복되는 죽음과 같아요. 분단과 전쟁으로 죽고 고통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 죽음의 기억을 색다르게 호명하는 꽃 같은 오브제 등을 수년전부터 쓰기 시작했지요. 색감의 효과나 구성 등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결과가 이 작품들입니다.”

송 작가는 82년 이종구, 황재형 작가 등과 노동자, 농민들 현장으로 들어가 작업하기 위해 임술년동인을 결성하며 현장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80년대 중후반부터 판문점, 임진강, 철원 일대 비무장 지대를 답사하고 큰 충격을 받아 분단 현실을 그리기 시작한다. 답사와 역사기록 탐색을 바탕으로 풀어온 그의 풍경화들은 오랜 고투에도 불구하고, 화단에서 판박힌 도상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감정이 날선 필치로 녹아든 광막한 비무장지대의 산하나 어둡고 침침한 색조로 묘사된 길과 논밭, 강퍅한 군사 구조물 등이 80년대 서구의 신표현주의적 터치로 거칠게 묘사된 이미지들을 연상시키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2000년 초반 <남한강> 연작 이후로 색채가 점차 밝아졌고 자연 자체에 대한 탐구에 몰입하게 된다. 2012년 이후 대작들을 처음 내보인 이번 전시에서는 더욱 밝고 따듯해진 색조에 꽃·마끈·못 등 사물 오브제의 흐드러진 구성과 날랜 필력 등을 구사하면서 비무장 지대 연변에 스민 역사와 인간의 자취를 서정을 머금은 서사적 정경으로 담아내는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민간 통제 구역인 의주로 옛 국도의 길바닥에 꽃들을 가득 채워넣은 <의주로>나 한국전쟁 당시 영국군이 몰살당한 전적지의 화장탑을 인골 이미지로 채우고 꽃이 주위를 부유하는 <낙화>는 이전 작품에서는 보기 힘들던 몽환성이 역력하다. 비무장지대를 답사하고 돌아오다 황혼녘의 임진강 하류 창공에 새까맣게 모여든 철새들의 모습을 떠올려 그린 대작 <나는 새는 경계가 없다>는 수천여개의 마끈과 붓질로 누런 하늘 새들의 장엄한 군무를 펼쳐낸다. “분단에 채인 숱한 죽음들에 대한 애도와 언제든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갈 수 있는 남북대치의 상황을 색다른 형식적 구도를 통해 환기해주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미 97년 동아갤러리 전시에서 뒤얽힌 소나무 둥치들에 우리 근대사 장면들을 투영한 대형 설치작업을 소개하며 현실 인식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작가가 앞으로 어떤 매체적 변신을 감행할 지 기대된다. 4월9일까지. (031)783-8149~9.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