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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휴대폰 액정을 스친 당신의 손끝이 예술이 된다

등록 2017-02-16 15:39수정 2017-02-16 15:46

사진이론가 박상우 ‘뉴 모노크롬’ 사진전
액정화면 등 극소노출해 만든 추상사진
상품화한 기존 단색조 회화 냉소적 성찰
박상우 작가의 모노크롬 사진 <선으로부터>. 휴대폰의 검은 사각형 액정화면 위에 묻은 손가락질 흔적을 조명으로 부각시켜 찍은 작품이다. 작가는 인간 인식 너머의 초월적인 세계가 아닌 일상의 자잘한 자취 속에서 모노크롬의 이미지를 끄집어 올린다.
박상우 작가의 모노크롬 사진 <선으로부터>. 휴대폰의 검은 사각형 액정화면 위에 묻은 손가락질 흔적을 조명으로 부각시켜 찍은 작품이다. 작가는 인간 인식 너머의 초월적인 세계가 아닌 일상의 자잘한 자취 속에서 모노크롬의 이미지를 끄집어 올린다.
최근 수년째 국내 미술시장에서 비싼 블루칩 상품으로 군림해온 70~80년대 원로 작가들의 단색조 그림(모노크롬)은 일반인들에게 무미건조하고 단순한 벽지풍의 이미지로 다가오기 십상이다. 대개 한두가지의 어두운 색깔과 단순한 무늬를 되풀이하며 드넓은 화면을 도배하는 스타일인 까닭이다. ‘이런 그림이 왜 인기일까?’라고 의아해하는 이들 앞에서 제도권 평론가나 화랑업자들은 세계무대에 내세울 만한 우리 전통사상, 동양적 정신성의 표현 산물이라고 추켜세우곤 한다.

젊은 사진비평가인 박상우 중부대 교수가 화랑가의 모노크롬 고담준론에 일침을 박는 자작사진들을 내걸었다. 서울 옥인동 갤러리 룩스에 차린 그의 작가 데뷔전 ‘뉴 모노크롬: 회화에서 사진으로’는 개념적 구도가 재미지다. 형이상학이나 초월적 인식이 아니라 현실 사물들을 찍을 수밖에 없는 사진 특유의 권능으로 포착된 일상의 모노크롬이 더욱 아름답고 강렬하게 다가온다는 ‘뉴 모노크롬’이라는 개념이 반영된 작품들인데, 그 착상과 기법들이 기발하고 신선하다.

2층 공간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검은 사각형의 비밀>은 멀리서 보면 온통 시커먼 모노크롬 작품이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수백장 오만원권을 노출시간을 극도로 적게 주고 촬영한 뒤 이 이미지들을 접붙인 합성사진임을 알게 된다. 요사이 모노크롬 회화들이 뜨는 비밀이 작품성 자체보다 돈 때문이라는 냉소다.

요즘 사람들이 하루내내 가장 많이 보는 휴대폰의 시커먼 액정화면도 측면에서 빛을 내쏘아 촬영하며 모노크롬 회화처럼 변형시켰다. 떨어져서 보면 영낙없는 모노크롬 회화지만 다가가 보면 사용중 생긴 숱한 스크래치(긁힘)와 균열 등이 드로잉이나 강렬한 필획처럼 드러난다. 작품 제목이 한국 단색조 그림의 대가인 박서보씨의 작품 제목에서 차용한 ‘묘법’이다. 작가는 다섯돈 금판에 측면에서 조명을 비춰 표면의 돌기들을 부각시키거나 일년중 하루 청명한 날 집중적으로 찍은 푸른 하늘 40여컷을 색상표처럼 배치하면서 사진으로 다양한 모노크롬의 스펙트럼을 빚어낸다.

광학기계인 사진을 빌려 작가가 손으로 그릴 수 없는 일상 현실의 모노크롬 이미지를 붙잡은 그의 작업들은 독일의 미학자 발터 벤야민이 말한 ‘광학적 무의식’의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노장사상 등 쉽게 와닿지 않는 담론들을 부르짖어온 기존 한국 모노크롬 회화의 허구성을 까발리는 동시에, 우리 일상과 사물 이면에 이토록 아름다운 이미지의 비경이 있었다는 것을 사진언어를 통해 발굴해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평론가 이영욱씨는 “매체적 특성에 갇힌 국내 사진 장르의 경직성을 넘어 감각적, 담론적으로 사진이 예술로 구실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호평했다. 3월5일까지. (02)720-8488.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갤러리룩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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