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 매향리 옛 교회 건물 안 스튜디오에 선보인 이기일 작가의 향나무 설치작품. 교회 종각 옆에 있던 향나무를 잘라내 물을 뿌리고 통째로 얼려 매달았다. 나무에 고드름이 달렸다가 점차 녹아내리는 모습을 통해 매향리의 쓰라린 과거 기억과 새 봄을 기다리는 염원을 함께 드러내려 한 작품이다.
원래 봄 매화 향기가 자욱히 퍼지는 동네였다고 했다. 그래서 붙은 지명이 ‘매향리’. 세상엔 과거 50여년간 미국 공군의 폭격연습장으로 더 알려졌지만, 가없는 서해 갯벌을 내려다보는 매향리 들녘의 지세는 예나 지금이나 수수하고 정겹다.
작가 이기일(50)씨는 연초 이곳의 옛 매향리교회 안에서 ‘1951-2005’란 제목의 전시를 벌이는 중이다. 매향리에서 한때 가장 우뚝했던 교회 안에 얼린 향나무를 옆으로 누인 채 통째로 매달아놓았다. 교회 종각 옆에 있던 것을 잘라낸 향나무에 물을 뿌린 뒤 겨울 서해바람에 꽁꽁 얼려 고드름을 주렁주렁 매달리게 한 뒤 천장에 달아맨 것이다.
지난해 작가는 칠이 벗겨지고 천장이 일부 무너진 폐교회에 들어와 일일이 고치고 수선하면서 자신이 5년간 작업할 경기창작센터 스튜디오로 복원했다. 왜 하필 복원을 알리는 첫 전시 대상으로 얼어붙은 향나무를 고른 걸까.
“향나무는 68년 지은 교회와 더불어 폭격에 망가져온 매향리의 과거를 속속 지켜보았습니다. 얼린 채 동결된 나무 자체가 이땅의 과거 세월을 간직한 것이죠. 옛 교회를 복원할 때 그냥 베어냈던 나무를 기억과 자연의 순환을 보여주는 매개체로 새롭게 보고 전시까지 풀게됐지요. 요즘은 날씨가 풀려 나무에 달린 고드름은 사라지고 물도 빠졌어요. 베어진 향나무는 이제 몸만 남아서 새싹이 돋고 매화가 피는 매향리의 봄을 맞겠지요.”
작업실로 활용할 교회는 미군과 주민들이 함께 지은 것이다. 작가는 이곳을 주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사랑방으로 내주고, 그들의 기억과 기록들을 모아 재구성하는 작업도 준비하려 한다. 폭격의 악몽과 반대 투쟁의 역정 같은 힘겨운 기억들도 있지만, 교회를 중심으로 정다운 공동체를 꾸렸던 좋은 기억들도 적잖이 남아있다고 한다. 앞으로 5년간 주민 인터뷰와 소장 사진, 메모 등을 수집해 떠날 때쯤 작은 기억의 박물관 정도는 남겨놓고 싶은게 소망이라고 작가는 털어놓는다. 서울 연희동 전시공간 스페이스막에서 향나무 설치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도 볼 수 있다. 전시는 28일까지. (032)890-482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경기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