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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르륵’ 영상이 펼쳐지면 “아! 이게 자본이로군”

등록 2017-02-28 18:04수정 2017-02-28 21:17

영국 스타작가 아이작 줄리언의 대작 영상전 ‘플레이타임’ 화제
글로벌시대 지구촌 각 지역 사람들 삶 담은 다채널 영상
석학 하비와의 대화를 다각도로 담은 <자본론>
난민문제 색다른 미학으로 포착한 <레오파드> 등 눈길
아이작 줄리언의 근작인 7채널 대형영상 설치작품 <플레이타임>(2014)의 한 장면. 두바이에서 일하는 필리핀 가정부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며 도시 근교 사막을 걷거나 응시하는 장면이다. <플레이타임>은 글로벌 시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양상을 세계 곳곳에서 각기 다른 노동에 종사하는 군상들의 삶과 그들 주변의 공간을 통해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아이작 줄리언의 근작인 7채널 대형영상 설치작품 <플레이타임>(2014)의 한 장면. 두바이에서 일하는 필리핀 가정부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며 도시 근교 사막을 걷거나 응시하는 장면이다. <플레이타임>은 글로벌 시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양상을 세계 곳곳에서 각기 다른 노동에 종사하는 군상들의 삶과 그들 주변의 공간을 통해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 이게 중력이로군!” 하고 말하는 것처럼, 공장이 문을 닫는 것을 보고 “아, 이것이 자본이로군!” 하고 말합니다.”

영상 속에 화자로 나온 영국의 인문지리학 거장 데이비드 하비(82)는 단순명료하게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의 개념을 짚어준다. “손에 잡히지 않고, 담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매우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는 그의 말이 흐를 즈음, 영상은 뮤직비디오처럼 요동친다. 뉴욕 월가 주식시장의 번잡한 풍경과 거래정보를 저장한 대형 컴퓨터가 가득 찬 방이 마구 명멸하며 지나간다.

영국의 세계적인 영상설치작가 아이작 줄리언(57)의 미디어아트 작품 <자본론>(kapital)은 눈과 귀에 쏙쏙 박히는 21세기 자본론 해설이다. 하비와 문화연구자 스튜어트 홀이 2013년 런던의 헤이워드 미술관에서 청중과 벌인 ‘자본론’ 공개 대담을 찍어 두 화면으로 재편집한 이 다큐 영상은 보는 이를 단박에 몰입시킨다. 21세기 세계 자본주의 흐름에 대한 석학들의 유려한 담론과 청중의 날선 질문들이 펼쳐지는 사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세계 정치경제의 시사적 영상들이 투영된다. 마치 입체경 쓰고 자본론의 심연을 유영하며 훑는 기분에 젖게 된다.

지금 서울 논현동 복합문화공간 플랫폼 엘에 차려진 그의 첫 한국 개인전 ‘플레이타임’은 오늘날 세상을 휘감는 가장 강력한 힘인 자본과 세계화의 현장을 다기하게 갈라진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작업들을 보여준다. 원근법을 벗어나 분산된 시선으로 세계화 시대 자본과 인류가 처한 현실적 상황을 거대하게 조망하는 셈인데, 글로벌 자본시대의 이슈들을 스펙터클한 영상과 적실하게 버무려 작품으로 만드는 천재적인 기획력이 세편의 출품작 곳곳에서 빛난다.

2층의 <자본론>이 세계화에 대한 담론적 성찰을 영상화했다면, 지하 1층의 천장 높은 전시실에 내걸린 7채널 영상물 <플레이타임>(2014)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작동 양상을 세계 곳곳에서 각기 다른 노동에 종사하는 군상들의 삶과 그들 주변의 공간을 통해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세계 금융 중심지 런던의 미니멀한 오피스 빌딩 속을 돌아다니며 자본의 권능을 큰 소리로 부르짖는 헤지펀드 매니저와 무리한 대출로 실업자가 된 채 들녘을 부유하는 아이슬란드의 남자, 사막 위에 세워진 두바이 대도시에 취업한 필리핀 가정부, 자본의 시대 철저히 부역하는 예술의 숙명을 역설하는 미술품 경매사와 그를 취재하는 여성 리포터(<화양연화>의 주인공 장만옥이 배역을 맡았다)의 이야기들이 규격 다른 화면 7개를 통해 1시간 넘게 흘러간다. 아이작은 화면 세부에서 정교하며 영리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자본론>에서 하비가 설파했던 자본의 3대 속성인 무형성, 이동성, 영향력은 이들의 대사와 독백, 절규를 통해 다시금 낭송되고 복기된다. 런던의 빈 빌딩 사무실에서 한바탕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장광설을 늘어놓은 뒤 흑인 연주자가 트럼펫을 고적하게 울리는데,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자본은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이라는 메아리 같은 독백을 던지는 장면이 강렬하다.

3층의 영상물 <레오파드>(2007)는 시칠리아 섬의 절경과 바로크풍 궁전을 배경으로 지중해를 건너 밀입국하려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절박하고 혼란스런 내면을 대비시킨다. 물결에 해초처럼 부유하는 희생자들의 옷가지와 궁전의 굽은 계단과 바닥을 몸부림치며 구르는 흑인 무용수, 해변에 널브러진 난민들의 사체와 모래 묻은 발가락 등이 몽타주처럼 편집된 영상은 충격적이면서도 아름답다.

3층 전시장에 나온 작가의 또다른 수작 <레오파드>(2007). 이탈리아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제목을 빌린 작품이다. 시칠리아 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바로크풍 궁전 내부를 배경으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절박하고 혼란스러운 내면을 독특한 미학으로 보여주고 있다.
3층 전시장에 나온 작가의 또다른 수작 <레오파드>(2007). 이탈리아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제목을 빌린 작품이다. 시칠리아 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바로크풍 궁전 내부를 배경으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절박하고 혼란스러운 내면을 독특한 미학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국에서 예술학교를 나와 영화와 미디어아트를 오가며 작업해온 아이작은 2010년 시드니 비엔날레에서 <만 개의 파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뉴욕 모마미술관과 파리 루이뷔통 미술관에서 전시한 스타 작가다. 201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때는 <자본론> 구절들을 매일 배우들이 낭송하는 <자본론 오라토리오>로 화제를 모았다. 지난 21일 전시장에서 만난 아이작은 “미술 시장 자본은 끔찍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런데 영화 시장 자본은 더 사악하더라. 미술판은 예술 측면에서 영화보다는 자유로운 편”이라고 웃었다. 4월30일까지. (02)6929-4471.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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