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 작가의 먹 드로잉 <응시의 그늘>(2016).
눈이 시리다.
중견화가 한상진(47)씨가 먹붓질로 옮긴 겨울 풍경과 정물들의 드로잉에서 단박에 와닿는 건 앙상한 흔적들의 아리고 예리한 느낌이다. 물감을 잘 빨아들이는 판화지에 바싹 마른 먹물로 미점을 찍거나 거친 선을 휘휘 그어 묘사한 이 겨울 이미지들은 언뜻 강퍅해 보이지만, 좀처럼 눈길 받지 못하는 자연 사물들의 미세한 내면을 뚫어본 결과물들이다. 강원 원주 백운산 겨울 숲과 서울 양평동 작업실에서 가져온 폐화분들, 땅에 떨어진 모과 열매, 그리고 돌멩이와 낙엽 조각에 이르기까지 그가 옮긴 근작 드로잉들은 성긴 먹의 색감과 깔깔한 질감 속에 외로운 존재들에 대한 끈끈한 관찰과 성찰을 녹여 넣었다.
서울 관훈동 나무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한 작가의 개인전 ‘드로잉, 스침’전은 “시린 겨울 숲의 느낌”을 담은 수십점의 드로잉 조각들의 모음들로 이루어졌다. 깔깔한 갈피로 먹선의 구사를 가급적 억제하며 묘사한 풍경과 정물이기에 여느 수묵화처럼 자르르한 윤기가 없다. 조선 선비들의 묵화처럼 담백하고 고졸한 운치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작품들이다.
전시장에 가면, 지난겨울 내내 원주 토지문학관 입주작가로 작업하면서 관찰한 백운산의 풍경들을 필두로 여러 보잘것없는 사물들의 소슬한 드로잉들이 벽면을 메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무의 잎들과 사물들 사이에 감도는 차갑고 선뜩한 기운을 느껴보는 것이 감상의 초점이 될 듯하다. 작가는 “도시인이 지닌 고독과 소외감을 냉엄한 겨울 산과 들녘, 사물들의 선뜩한 드로잉으로 표출하고 싶었다”며 “사물과 나, 풍경과 나 사이에 틈입한 찰나의 촉감, 그 과정에 존재하는 그림들”이라고 자기 작품들을 소개했다. 27일까지. (02)722-776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나무아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