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선고집’ 전에 공재 윤두서가 그린 작품으로 소개된 <마상인물도>. 나무 아래 비탈길을 준마를 타고 내려가는 관리의 모습을 그렸다. 당당한 인물의 풍채와 말의 기품을 잘 살린 그림이다. 1969년 나온 한국미술사 주요 자료집인 유복렬의 <한국회화사대관>에 도판이 실려있는 작품이다.
18세기 조선의 화풍에 새 기운을 불어넣은 선비화가 공재 윤두서(1668~1715)는 불온한 기운이 꿈틀거리는 <자화상>(국보)을 단연 대표작으로 꼽지만, 말 그림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가였다. 전라도 해남 연동 녹우당 생가의 마구간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을 뚫어지게 관찰하고 사생한 공력을 바탕으로 그린 그의 말 그림은 천하에 명성이 자자했다. 해남 윤씨 종가가 소장한 말 드로잉들과, 버드나무 아래 여성적 미감의 말 자태를 담은 <유하백마도>,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군마도(삼준도)> 등은 초상화에 버금가는 사실주의적 필치와 선비의 정신적 기백이 어우러진 전통 동물화의 걸작들이다. 실학의 초석을 놓은 성호 이익의 집안과 교유하며 현실에서 진리를 찾는 ‘실사구시’ 정신을 공재의 말 그림에서 실감할 수 있다.
해남 종가와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에서 간간이 보았던 공재의 말 그림과는 또 다른 작품 실물이 전시장에 나타나 애호가들의 눈길을 모은다. 고미술화랑인 공아트스페이스가 지난달 말부터 서울 관훈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고 있는 ‘택선고집’ 특별전이 그 자리다. 이곳에 가면 공재의 작품으로 소개되어 내걸린 <마상인물도>란 그림을 만나게 된다.
이 그림은 풍채 좋은 관리가 준마를 타고 나무 아래 비탈길을 위풍당당하게 내려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녹색빛 관복을 입은 관리는 이목구비의 음영이 뚜렷하며, 오른손으로 고삐를 바투 잡으며 말이 내닫는 속도를 조절하면서 길을 재촉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1969년 나온 한국미술사 주요 자료집인 유복렬의 <한국회화사대관>에 수록된 작품으로 60년대 이래 실물 전시는 사실상 처음이라고 한다. 배경을 간략화하고 인물과 말을 섬세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해 윤두서만의 독보적인 필력을 드러낸 득의작이라고 전시도록에는 설명해놓았다.
전시장에서는 <한국회화사대관> 수록작품을 두 점 더 소개하고 있다. 문인화의 산수풍경을 장인의 질펀한 필력으로 담아낸 전 오원 장승업의 <산수도>와 물고기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전 소림 조석진의 <군리도>다. 일제강점기 경매장에 추사 김정희와 현재 심사정의 작품으로 나왔다는 글씨, 그림들과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 작이라고 붙인 낯선 풍속도들도 나왔다.
미국, 일본의 동포수집가들과 화랑의 소장품이라는 출품작들은 학계에서 아직 본격적인 검증을 받지는 않았다. 작품 전거로 제시된 유복렬의 <한국회화사대관>도 미술사학도들에게 중요한 연구자료지만, 수록됐다고 확실한 진품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 고미술화랑 기획전은 대개 진위가 100% 가려지지 않은 발굴 작품들이 많이 나오게 마련이다. 학계와 애호가들에게 내보여 평가받는 일종의 ‘파일럿’ 전시인 셈이다. 이번 기획전도 새 작품을 보면서 안목을 닦고 전문가들의 품평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어보는 기회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택선고집’이란 전시명은 중국고전 <예기>의 한 구절로 ‘훌륭한 것만 가려내어 굳게 붙든다’는 뜻이다. 10일까지. (02)730-1144.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공아트스페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