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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서 빠진 화가들 소개한 블로깅이 인생 바꿨죠”

등록 2017-04-05 23:01수정 2017-04-06 08:16

[짬] ‘미술 이야기’ 파워 블로거 선동기씨

선동기씨 큰 딸이 올 봄에 결혼한다. 신씨가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딸에게 프라도 미술관에 가보라고 했더니 반응이 신통찮았다고 웃었다.
선동기씨 큰 딸이 올 봄에 결혼한다. 신씨가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딸에게 프라도 미술관에 가보라고 했더니 반응이 신통찮았다고 웃었다.

블로그가 인생을 바꿨느냐는 질문에 선동기(56)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3년 뒤면 직장을 그만 둡니다. 은퇴하면 더 많이 바쁠 것 같아요. (블로그 덕분에) 평생 할 일을 찾았죠.” 그는 네이버 블로그 ‘레스카페’(Rescape) 운영으로 2008년 이후 내리 7년 미술·디자인 부문 파워블로거로 선정됐다. 글을 올리면 보통 1000~1500명, 평소엔 하루 100~300명이 그의 블로그를 찾는다. 글은 세 권의 책으로도 묶였다. 첫 책 <처음 만나는 그림>은 9쇄, 두번째 <나를 위한 하루그림>은 6쇄까지 찍었다. 최근 나온 세번째 책 제목은 <그림 속 소녀의 웃음이 내 마음에>이다. 그를 지난 달 30일 경기 부천시 까치울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네덜란드 본사 회의로 유럽 출장
유명 미술관 순례하며 미술 공부
2006년부터 ‘네이버 레스카페’ 열어
‘처음 만나는 그림’ 등 책도 인기

방송사 낙방·사업 실패 등 좌절도
“은퇴 다가오지만 하고픈 일 많다”

그의 블로그엔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 감싸는 그림들이 넘친다. ‘블로그에서 위안을 받고 간다’는 댓글도 끊이지 않는다. “제가 평소 글쓰는 걸 좋아했어요. 2006년 지금 다니는 회사로 직장을 옮기면서 아내가 블로깅을 권했죠. 아내와 취미가 비슷해요. 처음엔 음악가들 뒷이야기를 정리해 올렸다가 그림으로 주제를 바꿨어요.”

그는 자동차 선루프를 만드는 네덜란드계 회사 인알파코리아에서 인사 담당 상무를 맡고 있다. 11년 재직 동안 두차례 승진도 했다. “인사 담당이어서 거의 매일 노조 간부들을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그림 블로깅을 한 데는 회사가 톡톡히 ‘기여’를 했다. “회의하러 일년에 서너 차례 네덜란드로 출장을 갑니다. 본사 배려로 회의는 보통 목요일에 끝내고 금요일과 휴일엔 암스테르담 등 유럽 유명 미술관을 보러 다녔죠.” 처음 미술관에 갔을 땐 아는 그림이 많지 않았다.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서양미술 입문서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이때 읽었다. 목표도 세웠다. ‘렘브란트와 피카소 같은 유명 화가가 아니라, 미술사가 빼먹은 화가 500명을 공부해 그들을 소개하리라.’ 그러니까 그의 블로그엔 마음을 빼앗는 느낌 충만한 그림을 그렸지만 이름은 다소 생소한 그런 화가들이 매주 1명쯤 올라온다. 지금까지 350명 정도를 소개했다. 화가를 찾고 자료 검색하는데 이틀, 자료 번역과 집필에 이틀 정도 걸린다. 퇴근하면 늘 2시간 정도 매달린다. “아트리뉴얼센터(artrenewal.org) 같은 외국의 유명 사이트를 爐어본 뒤 한글로 구글 검색을 해봅니다. 한국에 소개된 화가가 아니면 자료를 내려 받지요. 27달러만 내면 1년간 무제한으로 고해상도 그림을 받을 수 있으니 큰 부담은 아니죠.”

그는 2년 전부터 아내가 다른 형제들과 함께 공동상속을 받은 땅 1500㎡에 정원을 꾸미고 있다. 그가 지은 이름은 ‘모네의 정원’. “8차선 대로변 옆 그린벨트 지역에 있죠. 아내와 처형이 도맡아 관리하고 저는 주말에 주로 힘을 쓰는 일을 합니다.” 이 정원이 올해는 부천시 지정 체험학습장으로 선정돼 어린이 방문객들도 늘어날 것 같다. 올들어 새 비닐하우스도 한 동 지었다. 여긴 ‘어른 놀이터’다. “공연도 하고 강연회도 할 계획입니다.” 그가 유럽 여행에서 사온 고해상도 그림으로 미술체험 학습장도 꾸미려 한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 등 이미 10여 점을 표구해놓았다고 했다.

처음 출판 제의를 받았을 때 “난 아마추어인데 누가 읽겠느냐”는 생각에 손사래를 쳤단다. “책을 낼수록 자신감은 떨어집니다. 내 얘기로 다른 사람을 유혹할 자신이 없어요.” 하지만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은 확고하다. “저는 전문적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제 경험과 상상을 버무려 글을 씁니다. 제가 쓴 책 같은 부류도 이전에 없었을 겁니다.” 그림을 대하고 그가 살아온 삶에서 끌어낸 단상인 만큼 문턱이 낮다. 하지만 그림은 생소해 그림 지식이 제법 있는 층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그는 자신의 글이야말로 “그림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연습”이라고 했다. “보통 미술 선생님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림을 그리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림을 놓고 자기 느낌을 풀어보라고 하지는 않아요. 물론 제 그림 설명이 정답은 아닙니다. 각각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상상력을 확대하고 그림에서 의미를 건질 수 있지요.”

블로그 활동은 오프라인 친교로도 이어졌다. “첫 책을 낸 뒤 블로그 친구들과 첫 오프라인 모임을 했어요. 지난해에는 모네의 정원에서 20명이 모였죠. 1만 원이 넘지 않는 범위에서 저마다 빵과 과일, 술을 가지고 왔지요. 순식간에 뷔페 상차림이 되었죠. 67살부터 20대 후반 부부까지 나이차가 제법 됐는데, 관심사가 같아서 10분 만에 친해졌어요. 올 봄에도 할 겁니다.”

고대 사회학과 79학번인 그의 애초 꿈은 방송사 기자였다. “방송사 입사 시험에서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했죠. 한때 사업을 하다 폭삭 망해 자살까지 생각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그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마흔 넘어 피아노를 1년 동안 배웠어요. 앞으로 드럼과 수채화도 배우고 싶어요. 제가 고교 때 만화를 굉장히 잘 그렸어요. 한국 고대사 주제로 논픽션도 쓰고 싶고, 혁명을 주제로 한 여행기도 쓰고 싶어요.”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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