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독일 사진거장들의 후예를 조명하다

등록 2017-04-06 16:51수정 2017-04-06 21:50

성곡미술관 ‘독일현대사진’전
세계시장 주도하는 구르스키·스트루스 뒤 잇는
후배 10명의의 2000년대 이후 근작 선보여
클라우스 괴디케의 2006년작 <달로의 여행>. 사람, 동물, 풍경 등의 사진들을 모자이크해 벽지 같은 이미지를 빚어내고 있다.
클라우스 괴디케의 2006년작 <달로의 여행>. 사람, 동물, 풍경 등의 사진들을 모자이크해 벽지 같은 이미지를 빚어내고 있다.
시선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풍경이나 인물은 바싹 마른 이미지로 다가오는 사진들.

1990년대 이후 세계 사진시장을 주름잡아온 독일 현대사진은 이런 특징으로 요약된다. 작가의 앵글에 감성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근현대적인 공간, 구조물 등의 피사체에 거리를 둔 채 객관적으로 관찰해 거대한 화상을 뽑아내는 사진들이다. 사진학계에서는 철저히 대상을 뜯어보고 분석적으로 드러내는 독일 특유의 현대사진 스타일을 ‘유형학적 사진’이라고도 부른다.

이론적으론 난해한 것 같지만, 이런 냉랭한 사진이 주는 압도감과 시각적 흡입력은 크다. 다중이 모이는 경기장이나 여행지 공간 등을 거대한 구도로 포착한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나, 세계 대도시의 공허한 거리풍경을 찍은 토마스 스트루스 같은 거장들 작업이 그렇다. 이들의 사진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살풍경한 일상 현실에서 느껴지는 시각적 감수성을 단적으로 표출하면서 시장에서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이 거장들은 대부분 1980년대 이후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베른트 베허 힐라 베허 부부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는 점 때문에 ‘뒤셀도르프 학파’로 불린다. 2000년대 이후엔 국내 젊은 사진가들도 이들의 어법을 모방한 사진들을 쏟아낼 만큼 전 세계 사진계에서 영향력이 크다.

지난달부터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 마련된 ‘독일현대사진’전은 이런 맥락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것이 좋다. 전시는 뒤셀도르프 학파의 그늘 아래 거장들의 뒤를 이어 등장한 2000년대 이후 독일 후속세대 작가 10명의 크고 작은 사진 170여점을 소개하면서 독일 사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취지를 내걸었다. 독일 국제교류처의 세계 순회전으로, 90년 통독 이후 유럽 전역에서 활동 중인 낯선 독일 현대사진가들의 작업 흐름을 담는다. 출품 작가는 라우렌츠 베르게스, 알브레히트 푹스, 카린 가이거, 클라우스 괴디케, 우쉬 후버, 마티아스 코흐, 비프케 뢰퍼, 니콜라 마이츠너, 하이디 슈페커, 페터 필러 등 주로 50대 작가들이다.

출품작들은 거대한 장소성과 도시건축, 산업시설물, 인물군상 등의 확대된 이미지를 냉랭하게 담는 독일거장들의 작업 유형을 계승하면서도 21세기의 포스트모던한 감수성도 담고 있다. 유럽 곳곳에 남은 2차 세계대전의 전투 현장이나 군용시설, 교량 등을 허공에서 내려다본 부감법의 시점으로 낯설게 포착한 마티아스 코흐, 대중매체의 사진들을 연속적으로 확대해 포착하면서 거대한 이미지 아카이브를 구축한 페터 필러, 유명 예술가들의 사적인 순간을 포착해 독특한 초상 사진을 만들어낸 알브레히트 푹스, 몸이나 새의 실루엣을 모자이크한 사진작업을 벽지 같은 장식 형태로 변환한 클라우스 괴디케 등의 작업들이 눈에 들어온다.

‘독일현대사진전’에 나온 마티아스 코흐의 2006년작 <하인켈기의 비행장>. 작가는 사다리 등을 타고 높은 위치로 올라가 과거 전란 등에 얽힌 역사적 장소를 포착한 풍경을 낯설게 보여준다.
‘독일현대사진전’에 나온 마티아스 코흐의 2006년작 <하인켈기의 비행장>. 작가는 사다리 등을 타고 높은 위치로 올라가 과거 전란 등에 얽힌 역사적 장소를 포착한 풍경을 낯설게 보여준다.
다만, 현재진행형의 독일 사진을 보여주겠다는 전시의도가 잘 살아났는지는 의심스럽다. 디지털 기법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개인적 감정이나 일상의 사소한 이미지를 투영시킨다는 점에서 선배 거장들과 다른 개성들이 보이지만, 이들의 작업 유형이 어떤 차이점과 문제의식을 표출하는지 전시는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글로벌화 영향으로 전시에 나타난 작가들의 작업방식을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 작가들도 이미 충분히 활용해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작품들이 사실상 구작인 2000년대 초반의 작품이란 점도 아쉽다. 작가들의 흐름을 집약한 메시지를 던진다는 전시의 본령에서 보면 다분히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나온다. 5월28일까지. (02)737-8643.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성곡미술관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