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갠더의 2017년작 <자기개발 초상화>. 색맹인 작가가 딸의 도움을 받아 그린 독특한 색덩어리 회화다.
하반신을 못 쓰고 색맹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몸의 질곡을 뛰어넘어 현대미술에 대한 발랄한 도발을 즐겨왔다. 정연한 이론을 지닌 모더니즘의 엄숙한 대작들을 장난스럽게 뒤튼다. 몬드리안의 색채 추상 그림을 톱질 자국이 이리저리 엇갈린 나무판 그림으로 바꿔버리고, 딸의 도움을 받아 색덩어리를 휘휘 던진 거울 회화를 그린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영국 개념미술가 라이언 갠더(41)의 개인전은 ‘소프트모더니즘’이란 제목이 달렸다. 자신의 일상과 작업 경험에 얽힌 연상이나 이야기를 설치, 미디어, 회화, 조각, 사진, 책 등으로 풀어낸 작업들이 나온 전시다. 권위적이고 엘리트주의 성향이 강한 모더니즘의 고전적 작품들이 또 다른 미학적 소재가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2층에 가면 온통 색점 조각으로 뒤덮인 평면작업들이 보인다. 가만히 보면, 옛 지하철 안내판처럼 일부 점들이 기계장치로 뒤집히면서 눈물 흘리듯 색깔이 바뀌는 아날로그적 시각체험을 안겨준다. 그 옆 공간엔 몬드리안도 참여한 모더니즘 그룹 데스타일의 멤버였던 조르주 반통게를루의 경직된 조각을 뒤틀어 털복숭이상으로 변신시킨 설치작업들도 있다. 1층에는 땅에 떨어져 녹는 아이스크림의 으깨진 덩어리나 천장에 달라붙은 풍선들이 등장한다. 아이스크림을 땅에 떨어뜨리거나 풍선을 놓쳤을 때 어린아이가 느끼는 당혹감을 표현했다고 한다. 지하층에는 관객의 얼굴이 비치는 거울 면에 색깔덩어리를 던져 붙인 듯한 색채를 입힌 이색 회화들이 기다린다. 스스로 사진을 찍어 내보이는 셀피 문화 같은 2000년대의 나르시시즘을 새롭게 담은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런던에서 작업 중인 라이언 갠더는 2011년 베니치아비엔날레, 2012년 카셀도쿠멘타 전시로 세계 미술계에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파리 팔레드도쿄 등에서 전시를 열며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5월7일까지. (02)2287-35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갤러리현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