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를 맡은 이대형 예술감독이 12일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베네치아로 가는 국가대표의 첫 발걸음이 힘겹다.
격년제 국제미술제로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57회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5월13일~11월26일)를 앞두고 12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한국관 전시 기자회견은 내내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출품작가인 코디최(56)와 이완(38)씨는 이미 출국해 불참했고, 이대형 예술감독만 나왔다. 그는 전시안을 이야기하면서 “아직 필요한 예산을 다 구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전체 예산이 9억8000여만원입니다. 커미셔너를 맡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4억6천여만원을 지원받고, 나머지는 크라우드 펀딩 등을 통해 자체 조달했는데, 아직 5000만원 정도가 모자라 백방으로 뛰고있어요. 최근 국정농단 사건과 경기불황 여파로 기업 협찬이 어렵습니다. 현금 대신 인쇄물, 재료 등 현물협찬을 주로 받는데, 큐레이터 인생이 이렇게 어려울 수 있구나 싶습니다.”
올해 한국관 전시는 어느 때보다도 여건이 엄혹하다. 대기업 협찬이 사실상 막혔다. 지난해 예술감독과 출품작가 선정과정을 둘러싼 논란도 가라앉지 않았다. 미술시장 딜러 출신인 이대형씨의 전력이 구설에 올랐고, 그가 작가로 추천한 코디최는 국정농단 주역 차은택씨가 관여한 문화창조아카데미 정교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압 특혜가 아니냐는 억측까지 돌았다. 당사자들은 강하게 반발하면서 의혹을 보도한 일부 언론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한국관 전시 주제는 ‘균형을 잡아주는 평행추’를 뜻하는 영어단어 ‘카운터밸런스’(Counterbalance)로 잡았다고 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모든 것이 불균형해진 세상에서 예술의 역할과 책임을, 세대를 달리하는 두 작가의 작업들을 통해 묻고자 했다”고 이 감독은 설명했다. 이런 구상을 대표하는 출품작이 젊은 세대인 이완 작가의 ‘미스터 케이(K) 그리고 한국사 수집’이란 설치작업이다. 작가가 서울 황학동 풍물시장에서 단돈 5만원에 사들인 한 실존인물의 기록사진 1412장이 등장한다. 한국의 근대화 역사를 살아낸 할아버지 세대의 이 인물을 ‘미스터 K’로 명명하고, 그 삶의 다기한 자취를 그가 남긴 사진들을 통해 살펴보면서 이후 세대와의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얼개다. 작가는 세계화 시대 각기 다른 속도로 일상을 사는 600여 인물의 삶을, 그들만의 시간틀로 재구성한 각기 다른 시계 600여개로 표현한 <고유시(Proper Time)>도 내놓는다.
한국관 건물 상부에 전시되는 코디최 작가의 설치작업 <베니스인의 교향곡-허세의 힘>(2017). 베네치아에도 어김없이 몰려오는 투기적 자본주의의 폐해를 라스베이가스, 마카오의 카지노 네온간판 이미지를 차용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국이민자 출신인 코디최는 50대 중견세대로서 한국인·동양인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오늘날 예술세계에도 밀어닥친 세계화의 불균형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신작들을 전시한다. 한국관 지붕 위에 설치할 <베니스인의 교향곡-허세의 힘>이 이런 성찰을 단적으로 표상하는 대표작인이다. 역사도시 베네치아에도 몰려오는 투기적 자본주의, 상업주의의 폐해를 라스베이가스, 마카오의 카지노 네온간판들을 차용해 보여줄 예정이다. 이 감독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선은 부정적인데 예술로 어떻게 긍정적인 면을 부각할 수 있을지 작가들과 함께 고민한 결과물이 이번 출품작들”이라고 했다.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프랑스 퐁피두센터 선임기획자인 크리스틴 마셀이 총감독을 맡아 예술 만세라는 뜻의 ‘비바 아르테 비바’란 전체주제를 내걸고 치른다. 본전시에도 한국의 김성환(42)·이수경(54) 작가가 신작들을 들고 간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