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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카페인 듯, 덕후 아지트인 듯…미술관입니다

등록 2017-05-09 10:30수정 2017-05-10 14:05

관객의 일상, 취향, 욕망을 떠낸 전시들 올봄 대유행
카페 차려놓고 그림 감상, 유명인 개인공간 사진도 엿보고
마니아 아지트 표방, 대가 작업 따라하기 체험도
다양한 대중의 욕망, 기호 반영한 새 트렌드로 부상
‘카페소사이어티’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미술관 전시장. 1970년대풍 다방 공간에서 쉬며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카페소사이어티’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미술관 전시장. 1970년대풍 다방 공간에서 쉬며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늦봄 전시공간들은 ‘현란한 변신’이 대세다. 미술관이 그림들 걸린 카페·다방으로, 액서사리, 피규어 등이 널린 덕후 마니아들의 아지트로 탈바꿈했다. 유명인사들의 사생활을 엿보는 관음적 공간이나 명품인형 진열장으로 변하기도 한다.

대중의 삶과 일상, 그들이 선호하는 시각적 취향의 단면들을 떠서 보여주는 전시들은 4~5월 미술판의 새 트렌드다. 대중 기획전 하면 인상파 류의 블록버스터 거장전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양상이 확 달라졌다. 시각문화, 소비생활 취향에 맞춤한 이색기획전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일상과 생활에 친근한 요소들이 많아 청장년층 중심으로 관객몰이를 할 조짐도 보인다.

직접 해보고 느껴라 국내외 미술가들이 적은 작업지시문 40여개의 내용을 작가, 관객들이 그대로 따라하며 작업을 내놓는다.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 펼쳐진 이 풍경은 ‘두 잇(Do it) 2017, 서울’전(7월9일까지)이다. 솔 르윗, 오노 요코 등의 대가들과 국내 주요작가들이 적은 지시문들이 나왔다. “당신 계정의 비밀번호로 연애편지를 써보라”, “휴대폰으로 튀김을 만들라” 등의 이색 주문에 따라 소장 작가, 관객공모단이 작업한 결과물을 함께 보게 된다. 스위스 전시기획자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1993년 시작해 20여년간 세계 곳곳에서 순회중인 전시다. 대중이 예술을 직접 체험·창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기획됐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K)현대미술관의 ‘이것이 현대미술관이다’전(9월1일까지)에 가면, 셀로판테이프 500여개를 붙여 만든 거미집 모양 조형물 속에 들어가게 된다. 예술그룹 뉴멘/포유즈의 작품. 눕거나 앉아서 출렁거리는 테이프선의 탄력을 느끼면서 공간 요지경을 체험할 수 있다. 임지빈 작가의 금색 베어브릭 인형들 앞에서 기념사진 찍는 것도 관람의 일부다.

유명인사의 삶을 엿보다 유명인사들의 내밀한 삶을 엿보는 호기심 충족형 전시도 있다.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 차려진 일러스트작가 토드 셀비의 사진전(10월29일까지)이다. 패션 거장 카를 라거펠트와 구두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루부탱 등의 사생활 공간을 담은 사진과 일러스트 작업 400점을 내보이는 중이다.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과 기타 거장 에릭 클랩턴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패티 보이드의 사진전(8월9일까지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도 비슷하다. 두 연인의 내밀한 풍모를 담은 사진들, 작가의 모델 시절과 현재의 작업들, 1960~70년대 영국 영상문화를 재해석한 미디어아트 등을 선보인다.

일민미술관의 ‘두 잇’전 현장. 전시 공모단에 선정된 관객들이 미국 거장 솔 르윗의 지시문에 따라 벽면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다.
일민미술관의 ‘두 잇’전 현장. 전시 공모단에 선정된 관객들이 미국 거장 솔 르윗의 지시문에 따라 벽면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다.
취향을 주목하다 자하문 서울미술관의 ‘카페소사이어티’전(6월18일까지)은 도심 카페와 1960~70년대식 다방 얼개를 전시장 안에 들여왔다. 그 안에서 쉬면서 벽에 걸린 청장년 작가들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중계동 북서울미술관의 ‘덕후 프로젝트’전(7월9일까지)은 마니아들의 취향을 다룬다. 휴대폰 액세서리 수집품을 보여주는 박미나 작가, 낚시 도구를 전시한 진기종 작가, 영화 <킬빌>과 <파고>의 특정 장면을 회화로 만든 신창용 작가 등 10여명의 영상, 회화, 설치물을 통해 덕후 시각문화의 단면들을 집어냈다.

창업 30돌을 맞은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의 주요 작품과 제작 과정을 선보이는 ‘픽사 특별전’(8월8일까지)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차려졌다. 제작에 들어간 스케치, 스토리보드, 스크립트, 캐릭터 조각 등 500여점을 보여주는 이 전시는 개막 전 관람권 6만여장이 팔렸고 첫날 관객 4000여명이 몰렸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아트홀에 마련된 ‘바비, 더 아이콘’전(28일까지)은 1959년 첫 출시 이후 나온 역대 바비 인형들의 거대 진열장처럼 전시를 꾸렸다. 자기 자신을 찍는 ‘셀피’(selfie) 문화를 국내외 작가, 관객들의 다양한 사진, 영상 작업을 통해 조명한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의 ‘셀피’전(8월4일까지)도 독특한 구성으로 눈길을 끈다.

과거에도 패션과 현대미술의 협업, 다른 장르와의 퓨전 등 대중에 손짓하는 전시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올봄처럼 다양한 대중의 기호와 취향을 노골적으로 반영한 틀거리 전시들이 쏟아졌던 적은 없었다. 국내 미술시장이 단색조회화 일색이고, 개성적인 신작들이나 이슈가 거의 출현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대중 맞춤형 전시들은 유력한 유행 ‘상품’으로 미술판 언저리에 계속 생겨나 소비될 것으로 보인다. 미술아카이브 수집가 김달진씨는 “완성도보다 일상 생활이나 취향의 단면들을 포착하는 과정 자체에 주목하는 전시들”이라며 “창작자와의 거리를 좁혀주고 관객에게도 솔깃하게 다가가는 장점이 있어서 당분간 각광을 받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각 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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