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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베네치아에 간 한국미술, 불평등한 세계에 던진 질문

등록 2017-05-10 18:58수정 2017-05-12 18:30

10일 개관한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보니

코디 최·이완 작가 참가
자본주의와 세계화 민낯 꼬집은
‘베네치아 랩소디, ‘프로퍼 타임’ 등 출품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지붕 위에 미국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에 있는 카지노, 모텔 등의 현란한 네온 간판을 차용해 눈길을 받은 코디 최 작가의 설치작품 <베네치아 랩소디>.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지붕 위에 미국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에 있는 카지노, 모텔 등의 현란한 네온 간판을 차용해 눈길을 받은 코디 최 작가의 설치작품 <베네치아 랩소디>.

고도 베네치아(베니스)에서 한국 미술은 제대로 ‘균형추’를 잡을 수 있을까.

세계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지닌 이탈리아의 격년제 국제미술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올해 잔치판에 한국 국가대표 미술가들이 들고나온 메뉴는 ‘섞어찌개’다. 격변의 한국 근현대사와 불균등한 세계화, 자본과 관광에 침식당한 비엔날레의 현실이 재료가 됐다. 이들을 뒤섞은 잡탕 속에서 시대의 균형추인 예술의 맛을 우려내 보여주겠다는 포부다.

13일 비엔날레 개막에 앞서 10일 낮 개관한 베네치아 카스텔로 공원 안 한국관은 지붕, 외벽이 현란한 네온사인 간판들로 뒤덮인 몰골이었다. 네온 조명으로 치장한 용과 호랑이, 공작 조형물의 기괴한 자태가 지붕 위에 펼쳐졌다. 미국 이민자 출신 출품작가인 코디 최(최현주·56)의 설치작업 <베네치아 랩소디>다. 미국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의 카지노촌에 있는 모텔과 도박시설 간판들을 차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베니스인의 교향곡-허세의 힘'이란 부제가 달린 이 작업은 베네치아 비엔날레에도 관광, 비즈니스를 앞세워 밀려오는 투기적 자본의 민낯을 꼬집는 작품이다.

제각기 다른 속도로 돌아가는 시계 668개를 전시해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들만의 시간틀로 재구성한 이완 작가의 <프로퍼 타임>.
제각기 다른 속도로 돌아가는 시계 668개를 전시해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들만의 시간틀로 재구성한 이완 작가의 <프로퍼 타임>.
한국관 안에서는 다른 출품작가 이완(38)씨가 우리 근현대사와 세계화 시대의 시간을 소재로 만든 오밀조밀한 설치작업들이 취재진을 맞았다. 아드리아해 바다가 보이는 주전시장(메인홀)은

<미스터 케이(K) 그리고 한국사 수집>이라는 이름을 붙인 아카이브 설치작업이 가벽에 가득 채워졌다. 작가가 서울 황학동 시장에서 5만원에 사들인 지난 세기 한 실존인물의 생애 사진들과 구한말 이완용 글씨부터 이번 대선 보도기사 등의 기록물까지 1000여건의 작가 수집 기록들이 나붙었다. 한국의 근대화 역사를 살다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세대의 이 인물을 작가는 ‘미스터 케이’로 이름 붙이고, 그 삶의 다기한 자취를 사진, 동시기 신문, 각종 생활유물을 통해 투시하면서 이후 세대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 간다. 안쪽에 딸린 작은 전시실에서는 지금 각기 다른 속도로 일상을 사는 세계 곳곳 사람들의 삶을, 그들만의 시간틀로 재구성한 시계들로 표현한 설치작업 <프로퍼 타임>(Proper Time: 고유시)도 볼 수 있다. 제각기 다른 속도로 돌아가는 시계 668개로 벽을 채워놓은 얼개가 색다르다. “내일 아침식사를 위해 오늘 몇시간 일하느냐”고 세계 각지의 사람 668명에게 물은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초침의 속도가 모두 다른 기괴한 시계를 장착한 작업이다. 아침식사비를 벌기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한다고 답변한 동남아 노동자의 시계는 재빨리 돌아가는 데 비해, 수십분만 일한다고 말한 뉴욕 금융가 직원들의 시계는 천천히 움직인다. 재깍거리는 초침소리와 설문자들의 다기한 육성이 뒤섞인 불협화음까지 섞여들어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 불평등 문제가 개인의 삶에 어떤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지를 색다른 각도에서 느끼게 해준다.

한국관 안 주전시장에 나온 이완 작가의 수집설치물 <미스터 케이 그리고 한국사 수집>.
한국관 안 주전시장에 나온 이완 작가의 수집설치물 <미스터 케이 그리고 한국사 수집>.

지난달 발표된 한국관의 전시 주제는 ‘균형을 잡아주는 평행추’를 뜻하는 영어단어 ‘카운터밸런스’(Counterbalance)다. 전시감독인 이대형 기획자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모든 것이 불균형해진 세상에서 예술의 역할과 책임을, 세대를 달리하는 두 작가의 작업들을 통해 묻고자 했다”고 했다. 할아버지(미스터 케이)-아버지(코디 최)-이완(아들)으로 연속되는 3세대의 작업들을 통해 서구와 다르게 전개되어온 한국과 아시아의 독특한 모더니즘을 제대로 보여주자는 게 이 기획자와 두 출품작가의 속내다. 개인의 삶과 역사에 방점을 찍고 미세한 삶의 층위에 켜켜이 쌓인 한국 특유의 근대성을 미술의 언어로 드러내려는 기획인 셈이다. 전시장 주목도는 기대 이상으로 높다는 평이다. 영국 <아트뉴스> 등의 서구 취재진이 “주목받는 국가관 가운데 하나”라는 호평을 내놓았다고 이 감독은 전했다.

자신의 벽면 설치작품 <프로퍼 타임>과 조형물 <더 밝은 내일을 위하여>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완 작가(왼쪽)와 이대형 전시감독.
자신의 벽면 설치작품 <프로퍼 타임>과 조형물 <더 밝은 내일을 위하여>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완 작가(왼쪽)와 이대형 전시감독.
그러나 한국과 아시아 특유의 역사-미술 담론을 부각시키려는 전략이 비엔날레에서 얼마나 관심을 모을지는 미지수다. 비엔날레 자체도 국력의 각축장이나 미술시장, 관광시장의 일부분으로 세속화하는 흐름이 뚜렷해졌고 아시아적 미술담론도 10여년 전부터 집중조명을 받아온 상황이기 때문이다. 두 출품작가의 작품들이 소품까지 합쳐 10건이 넘을 정도로 물량이 과다하고 각기 다양한 담론을 품고 있어 압축적이고 강렬한 주제 전달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크리스틴 마셀 퐁피두센터 수석큐레이터가 총감독을 맡아 `예술만세'를 전체 주제로 내세운 이번 비엔날레는 13일 개막해 11월26일까지 열린다. 한국관과 별개로 크리스틴의 본전시에 참여하는 이수경 작가는 11일 시내에서 현대음악, 무용, 보디빌딩, 패션이 어우러진 `태양의 궤도를 따라서'란 신작 퍼포먼스도 벌일 예정이다. 글·사진 베네치아/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한국문화예술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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