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클렘이 1973년 5월 찍은, 당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와 소련 국가원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첫 정상회담 장면. 화면 중심에 브란트가 있고 브레즈네프와 수행원, 통역들이 좌우에 서거나 앉아 사담을 나누고 있다. 공식 기록사진과 다른 연극적 구도와 인간적 분위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1979년 동독 수도 동베를린에서 노령의 두 국가원수는 키스에 가까운 입맞춤을 하며 서로의 연대감을 과시했다.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동독의 호네커 서기장. 둘이 볼이 홀쭉해지도록 뽀뽀하는 사진은 10년 뒤 서독에 흡수된 동독의 운명과 겹치며 세계사의 한순간을 장식했다.
나중에 극사실 풍자화로도 옮겨진 이 사진은 두 명의 서구 사진가가 찍었다. 입맞춤하는 둘의 상반신만 클로즈업한 이가 프랑스 사진가 레지 보쉬이며, 다른 각료와 장관들이 흐뭇한 표정으로 둘의 입맞춤을 지켜보는 장면까지 파노라마처럼 담은 이는 독일 사진기자 바바라 클렘이었다.
“나는 인간이 사는 풍경을 좋아한다. 절대 클로즈업한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말하는 거장 바바라의 사진 120여점이 부산 해운대 고은 사진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여기엔 두 국가원수의 키스 사진도 포함돼 있다. 1970년부터 독일 보수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사진기자로 재직하며 30여년간 독일 통일 전후의 정치·사회상을 포착한 사진들로 전설이 된 여성 대가의 발자취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회고전이다.
그는 독일의 통일 과정 전후를 가장 유심히 관찰했던 사진가였다. 그래서 전시의 주역은 역시 독일의 정치·사회상에 얽힌 풍경과 그에 얽힌 여러 인간의 드라마를 담은 사진들이다. 1977년 베를린 장벽 위에서 그 너머의 지인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시민들을 담은 첫 작품부터 노동자, 이주민의 고달픈 일상과 생활공간을 담은 작품들까지 독일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작가의 냉철한 관찰과 인간적인 시선이 녹아 있는 수작들이다.
보도사진은 사건과 현장의 객관적 진실을 포착하는 것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바바라는 사진의 진실은 기실 사진기를 든 사진가의 진실일 뿐이라고 말하며 특유의 인간적인 시선과 극장 무대를 연출한 듯한 치밀한 구성감을 강조한 작업을 지속해왔다. 1973년 5월 찍은, 당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와 소련 국가원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첫 정상회담 장면은 이런 작가의 장점을 돋보이게 전해주는 압권이라 할 만하다. 화면 중심에 브란트가 있고 브레즈네프와 수행원, 통역들이 좌우에 서거나 앉아 사담을 나누고 있는데, 설명을 붙이지 않으면 노령의 회사 중역들과 부하들이 흐트러진 모습으로 지난 시절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20대 시절 이 컷을 찍은 바바라는 21일 전시장에 마련된 관객과의 대화에 나와 말했다. “당시 현장에 기자는 나밖에 없었지만, 기자처럼 행동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기자의 존재를 알게 되면 사람들의 행동이 확 바뀌고 소중한 현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의식하지 않게 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 내 작업의 요령이다.”
1981년 프랑크푸르트의 슈테델미술관에서 찍은 팝아트 대가 앤디 워홀의 초상사진. 독일 문호 괴테를 그린 대형그림 앞에서 워홀이 다소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서있다. 그림은 1786년 티쉬바인이란 화가가 그린 <캄파냐의 괴테>란 작품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괴테의 자태를 담았다.
1970년대 동독의 우중충한 소도시 인간군상들이나 국가수반들의 초상화가 거꾸로 내걸린 축전 현장을 찍은 작품 등은 당시 사람들의 행동과 공간을 희극무대처럼 절묘하게 포착했다. 유명한 프랑스 사진 거장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명언인 ‘결정적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도 연이어 등장한다. 1981년 프랑크푸르트의 슈테델 미술관에서 찍은 팝아트 대가 앤디 워홀의 초상사진은 독일 문호 괴테의 대형 그림 앞에서 그가 다소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서 있는 한순간을 자연스럽게 잡아냈다. 1971년 익살스런 표정으로 작가 앞에 걸터앉은 영화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의 모습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사건의 전말이, 그 전후 관계가 가장 충실하게 집약된다고 즉물적으로 판단되는 한 순간 현장의 사람들을 바로 찍었다고 털어놓은 바바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길로 작업들을 만들었다는 데 대한 자부심이 가득해 보였다. “내 사진엔 어떤 조작, 연출도 없다. 사건 속 군중 혹은 사람들의 관계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간 순간 철저한 수작업으로 셔터를 누르고 암실에서 현상했다.”
부모가 모두 화가였던 덕분에 그들의 작업 모습을 보면서 화면의 배경과 구성, 조형적 요소의 관계, 수작업의 중요성 등을 체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작가는 말했다. 8월9일까지. (051)746-0055.
부산/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고은사진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