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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바람난 그림…요즘 꽂힌 거? 아무데서나 춤추기!

등록 2017-06-03 09:44수정 2017-06-03 11:09

아직은 춤추는 듯한 자유로운 느낌의 서촌 옥상도를 그려내기는 힘들다. 춤추는 내 모습을 찍은 사진을 이리저리 잘라 옥상도 위에 놓아 보며 놀다가, 이것도 재미난 그림이 되겠다 싶어졌다. 가로 그림: 서촌 옥상도 36, 2017년 5월, 펜&콜라주, 53×33㎝
아직은 춤추는 듯한 자유로운 느낌의 서촌 옥상도를 그려내기는 힘들다. 춤추는 내 모습을 찍은 사진을 이리저리 잘라 옥상도 위에 놓아 보며 놀다가, 이것도 재미난 그림이 되겠다 싶어졌다. 가로 그림: 서촌 옥상도 36, 2017년 5월, 펜&콜라주, 53×33㎝
[토요판] 김미경의 그림나무
⑪ 춤, 춤, 춤
며칠 전 어떤 모임에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진행자가 ‘나는 요즘 ○○○에 꽂혀 있다’는 걸 꼭 집어넣어 말해달란다. ‘요즘 내가 꽂혀 있는 거? 옥상인가? 꽃인가? 인왕산인가? 아하 그 남자?’ 내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릎을 탁 쳤다. ‘길거리에서 춤추기!’ 내가 요즘 꽂혀 있는 건 바로 길거리에서 춤추기다. 아무데서나 춤추기! ㅎㅎㅎ

단단히 났다. 춤바람이. ‘장바구니 들고 카바레로!’가 아니라, ‘화구가방 메고, 산으로, 들로, 도로로!’다. 미국 살 때 라인댄스를 열심히 추던 한 친구가 행복해지고, 건강해지고, 예뻐진 모습이 보기 좋아, ‘언젠가 나도 춤을 배워야지!’ 생각했지만, 이렇게 센 늦춤바람이 날 줄은 몰랐다. 춤을 배우고 춘 지는 4년째지만, 길거리에서, 산에서, 들판에서, 추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도시생활 속에서 거세되어 버린
자연성을 회복하고 싶은 갈망’이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옥상에 올라 인왕산과 북악산을 보며
그림 그리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어느 날 ‘두 발 디딜 수 있는 곳은 모두 춤출 수 있는 무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횡단보도, 상점 앞, 골목 앞 느티나무, 큰길가 가로수, 건물 계단, 도보, 하늘… 모든 공간이 재미나고 색다른 무대로, 무대장치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혼자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대기 자세를 취한다. 신호가 바뀌면, 귀에 꽂은 이어폰 음악에 맞춰, 하늘로도, 땅으로도, 옆으로도, 이리저리 팔과 다리를 쭉쭉 뻗으며, 빙그르르 돌며, 천천히, 가끔씩은 폴짝폴짝 뛰며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의아한 표정, 바쁜 걸음걸이, 깜빡이는 신호등, 줄지어 옆에 서 있는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은 사람들, 바람에 잎을 살랑살랑거리는 가로수들, 하늘, 구름, 저 멀리 건물들, 가로등들…. 모두 내 춤과, 음악과 함께 넘실대는 느낌이다.

서촌 옥상도 37, 2017년 5월, 펜&콜라주, 24.5×33.5㎝
서촌 옥상도 37, 2017년 5월, 펜&콜라주, 24.5×33.5㎝
광화문 광장은 온통 살아 있는 무대장치로 넘실댄다. 세월호 아이들의 얼굴 그림에 입을 맞추면서 울며 춤추고, 바닥에서 물을 뿜는 분수대 속에 들어가 흠뻑 젖어 깔깔거리며 춤춘다. 초파일 하루 전날 밤에는 광장에 설치된 미륵사지 석탑 모양의 연등을 무대장치로, 조명으로, 신나게 춤췄다. ‘미친 여자가 틀림없어!’ 하며 바라보는 ‘쯧쯧쯧~’ 시선이 뜨겁긴 하지만, ‘왜 길거리에선 똑바로 걸어야만 하는 거야?’ 하고 중얼거리며 참아낸다. ㅎㅎㅎ 어릴 때 폴짝폴짝 뛰며 걸었던 기억까지 새롭게 떠올린다. 팔을 앞뒤로 휙휙 내두르며, 폴짝폴짝 뛰어가다가, 길거리 여기저기 있는 돌멩이도 빵빵 차다가, 어떨 땐 엄마 아빠가 양손을 하나씩 잡아 하늘 높이 몸뚱이 전체를 올려주기도 했다. 그 동작들을 돌이켜보니, 모두 춤이었던 것 같다. 그런 동작들을 어른이 되면서, 하나씩 하나씩 잃어버린 게 아닐까? 왜 ‘미친 여자 같다’는 눈흘김을 받으면서, 나는 길거리에서 춤추고 싶은 걸까? ‘도시생활 속에서 거세되어 버린 자연성을 회복하고 싶은 갈망’이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옥상에 올라 인왕산과 북악산을 마주 보며 그림 그리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매일매일 옥상에 올라, 혼자 그림 그리다가, 팔 아프면 춤추다가, 또 그림 그리다가, 또 춤춘다. ‘내 그림 속에 춤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까?’, ‘춤추며 횡단보도를 건널 때의 그 도시 속에서 문득 원시를 만나는 그 황홀한 느낌을 어떤 구도로 그려낼 수 있을까?’, ‘춤처럼 좀 더 자유로운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까?’, ‘춤처럼 내 그림이 좀 더 솔직해질 수는 없을까?’가 요즘 내 그림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됐다. 아직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 그림 속에서 춤이 더 무르익어 녹아나는 날을 꿈꾼다. 내 그림이 춤처럼 좀 더 솔직하고, 좀 더 자유로워지는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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