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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우리가 몰랐던 고대 아라비아의 ‘글로벌 세상’

등록 2017-06-14 11:34수정 2017-06-14 11:43

국립중앙박물관 고대 문명전 ‘아라비아의 길’
사우디아라비아 고대 유적·유물 국내 첫 소개
선사·헬레니즘·이슬람 시대 향료 교역, 순례의 길
그리스·로마, 근동, 이집트 등 문명교류사 보여줘
사우디 나즈란에서 나온 1세기께의 청동머리상. 곱슬머리 남자의 것으로 오늘날 아랍인과는  전혀 다른 서구인의 모습이어서 지중해권과의 활발했던 문화교류를 짐작하게 하는 유물이다.
사우디 나즈란에서 나온 1세기께의 청동머리상. 곱슬머리 남자의 것으로 오늘날 아랍인과는 전혀 다른 서구인의 모습이어서 지중해권과의 활발했던 문화교류를 짐작하게 하는 유물이다.
믿겨지지 않는다. 정말 이 유물들이 고대 아라비아에서 유통되거나 만들어진 것일까.

17~18세기 유럽의 왕족상과 영락없이 흡사한 곱슬머리를 인 남자상이 진열장에서 관객을 쳐다본다. 역사의 무상을 느끼는 듯 허무감에 잠긴 표정이다. 기원전 1세기 고대 남부 아라비아의 출토품이란 표찰이 붙어있다. 놀라운 발견은 이어진다. 전시장 가운데 도열한 세 인물의 거상들은 고대 그리스 아르카익 조각을 대표하는 쿠로스상의 자세를 방불케한다. 이 상 또한 2400여년 전 아라비아 서부 도시 울라에 세워졌던 것들이다. 예수의 탄생 때 유향을 들고 찾아온 동방박사가 걸어왔던 길, 바로 그 교역의 길은 이런 아라비아의 고대문명 터전 위를 면면히 지나쳐갔다.

사우디관광국가유산위원회의 세계 순회전으로 지난달부터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대 아라비아문명전 ‘아라비아의 길-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8월27일까지)는 눈을 새로 뜨게 만드는 고대 아라비아 반도문명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사우디는 이슬람 성지 메카가 있고, 1970년대 한국 노동자들이 땀방울을 흘린 곳으로 대개 알고있다. 하지만, 이 전시는 그런 얕은 상식을 훌쩍 뛰어넘어 기원전후의 세계사에서 글로벌 교역로이자 동서문명의 또다른 교차로였던 아라비안 반도의 찬란한 역사적 실체를 이야기해준다.

처음 만나는 선사시대실부터 상식은 깨어진다. 관객들은 아라비아의 인류사가 100만년 훨씬 이전부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최고 180만년 전까지 편년이 올라가는 찍개나 긁기 등을 통해 아프리카의 초기인류가 초창기 이동한 곳이 아라비아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석기문화도 2010년 확인된, 기원전 8000년께 마가르 문명 유적의 근래 발굴성과를 볼 수 있는데, 굴레 씌운 말의 석상은 이 지역에서 인류사상 처음 말 사육이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전시의 매력은 낯선 아라비아 공간에서 문명교류사의 흔적들을 발견하는 재미다. 숱한 실크로드 관련 전시에 나왔던 그리스와 동방문명의 융합산물인 헬레니즘, 로마시대 유물들이 도처에 등장한다. 기원전 2300년께 동아라비아 바레인 근처에서 태동한 딜문 문명의 후예인 타루트섬의 그리스어 명문 석비, 타즈에서 나온 1세기 소녀무덤에서 휘황찬란하게 쏟아진 그리스·로마계 수입공예품들, 그리스 소녀상이 받치는 침대기둥, 반도 남부의 국제도시 까르얏 알타우에서 나온 그리스풍의 곱슬머리 남자 두상 등이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사우디의 헤그라(마다인 살레)에서 출토된 로마제국의 라틴어 명문비. 2세기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치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로마 군대의 도움으로 이 지역의 한 건물을 재건축한 것을 기념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로마제국이 당시 사우디 지역까지 영토로 지배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우디의 헤그라(마다인 살레)에서 출토된 로마제국의 라틴어 명문비. 2세기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치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로마 군대의 도움으로 이 지역의 한 건물을 재건축한 것을 기념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로마제국이 당시 사우디 지역까지 영토로 지배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헤그라(마다인 살레)에서 출토된 로마제국의 라틴어 명문비도 흥미롭다. 2세기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치세기에 만들어진 이 비석은 로마 군대의 도움으로 이 지역의 한 건물을 재건축한 것을 기념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는데, 엄정한 로마글체의 모습에서 아라비아까지 영토를 확장한 로마제국의 위용이 실감나게 전해진다. 특히 이 전시의 중요한 유물이 나온 울라, 까르얏 알타우 등의 교역도시들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배경인 요르단 페트라 유적을 낳은 나바테아 왕국의 주요 거점이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상당수 유물들이 아라비아 서북부 중앙아시아, 이란, 소아시아의 실크로드 유물들과 양상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기원전후의 아라비아 반도 일대가 거대한 글로벌 문명세계를 구축했다는 것을 전시는 보여주는 셈이다.

전시장 뒤쪽에는 당시 아라비아 동서 교역로와 순례길을 지배하거나 거쳐간 사람들의 인간적 감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삶과 죽음에 얽힌 유물들도 적지않게 나와있다. 특히 7세기 이슬람 문화권이 된 이후로 성지 메카 인근에서 발견된 순례자와 주민들의 묘비명은 감동적이다. 우리 삶의 유한성, 허무함에 대한 인류사를 초월한 옛 사람들의 생각들을 소탈하게 전하고 있다. 한 구석에 놓인 12세기 메카에서 요절한 청년의 묘비엔 부조된 등불의 상과 더불어 아름다운 아랍글씨체로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죽음은 세상에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주었소.”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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