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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광화문 지킴이 ‘노숙택’의 국가 오작동 현장

등록 2017-06-25 17:17수정 2017-06-25 19:07

아트선재의 노순택 사진전 ‘비상국가Ⅱ’
강정마을, 연평도, 매향리, 용산, 광화문…
작가만의 철저한 현장성 돋보여
함성·절규·투쟁의 사진, 광장 아닌
제도권 미술관 직행한 것은 논쟁점
아트선재 전시장에 나온 노순택 작가의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 사진 중 하나다. 바닥에 붙여놓은 수인복을 입은 국정농단 책임자들의 사진 위로 사람들의 발자국이 지나간 흔적들이 무수히 찍혀 있다.
아트선재 전시장에 나온 노순택 작가의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 사진 중 하나다. 바닥에 붙여놓은 수인복을 입은 국정농단 책임자들의 사진 위로 사람들의 발자국이 지나간 흔적들이 무수히 찍혀 있다.
그가 찍은 뜨거운 현실은 사진 속에서 냉랭한 연극 무대처럼 뒤바뀐다. 전경과 대치하는 시위대의 풍경은 부조리극의 한 장면으로 변한다. 불탄 용산 남일당 철거 건물의 잔해와, 북한의 포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연평도의 민가 실내는 기괴한 아름다움을 빛내는 설치작업이 된다. 사람, 사물, 사건 등의 피사체들을 배우와 소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절묘한 마법은 기발한 언어의 감각으로 현장을 좇으며 시선을 부단히 움직여온 결과물이다. 한국 사회를 격동시킨 시국사건의 현장들을 포착해온 다큐사진가 노순택(46)씨의 이런 작업들은 그래서 매력적이면서도 논쟁적인 화두를 던지곤 한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이달 초 시작된 그의 신구작 기획전인 ‘비상국가 Ⅱ-제4의 벽’은 노순택표 사진의 특장을 가장 핍진하게 보여주는 작품마당이다. 한스 디(D). 크리스트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2008년 작가의 첫 국외전 이후 10년여 사이 국내에서 벌어진 ‘국가 오작동’의 현장을 비추는 신구작 200여점으로 짜였다. 기획자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미술관 쿤스트페라인에서 남북한의 분단 실상을 소재로 열었던 작가의 첫 국외 개인전 ‘비상국가 Ⅰ’의 디렉터를 맡은 바 있다.

기획자는 시국 사건의 뜨겁고 처절한 현장을 비춘 사진들의 다기한 이미지들을 11개의 연작으로 묶어 2, 3층의 기둥을 박은 건축적 공간에 재구성해 놓았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 연평도 포격 사건, 매향리 옛 미군폭격장, 천안함 사건, 용산참사, 최근의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 등에서 쉴 새 없이 발품을 팔며 찍은 크고 작은 신구작들이 전시장의 천장과 바닥 사이에 숱하게 가로놓인 쇠기둥 사이에 가로놓이거나 벽면에 군집해 붙은 채 관객들을 맞고 있다. 반원을 다시 쪼갠 모양에다 천장이 높은 아트선재 전시실이 사진을 전시하기에는 난감할 만큼 휑한 구조임을 고려하면, 이런 공간 연출은 기발하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이런 구성에 맞춤한 작업들은 작가의 과거 어느 전시들보다 대상 자체의 물성, 형식이 부각된 ‘현대미술’의 구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성탄트리가 놓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인형처럼 도열한 전경들 모습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민가나 식당 등에서 찍은 불탄 사과와 고깃덩어리 같은 작은 피사체를 부각한 이미지 등이 대표적이다. 2009년 용산 참사를 찍은 연작들에서는 불타고 남은 구조물들의 세부를 찍어 인위적인 조형물 같은 느낌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현장이미지들에 작가는 분단과 이념 등으로 분리된 ‘섬’ 개념을 끌어들여 매향리 폭격장과 노동자들의 고공농성(‘고장난 섬’, ‘현기증’)을 이야기한다. 시위대를 향해 시선을 난사하는 경찰 채증반의 카메라나 뱀 아가리 같은 최루액 분사기의 클로즈업 사진 등을 통해 관객과 배우 사이 보이지 않는 ‘제4의 벽’ 개념을 풀어내기도 한다.

작가가 2015년 광화문광장의 시위 현장에서 근접촬영한 최루액 분사 장치의 세부 모습. 아가리를 치켜든 뱀 같은 인상으로 다가온다.
작가가 2015년 광화문광장의 시위 현장에서 근접촬영한 최루액 분사 장치의 세부 모습. 아가리를 치켜든 뱀 같은 인상으로 다가온다.
지난 연말 광화문 촛불공간에서 서너달여 노숙하며 기록에 몰두해온 그에겐 ‘노숙택’ 별명이 붙었다. 기록자, 작가로서 현장을 탐닉해온 특유의 이력이 전시에선 출품작들의 철저한 현장성과 장면들을 사유하며 부각된 독특한 조형성으로 표출된다. 도로 바닥에 시위대 발자국들이 남은 채 방치된 국정농단자들의 수의 차림 포스터들과 손팻말에 쌓인 눈을 배경으로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췌한 잔상 등은 작가만이 만들 수 있는 서사적 풍경이라 할 만하다.

아트선재는 석달 전 김선정 관장의 부친이자 경제비리사범인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치적 전시장으로 전용돼 논란을 불렀다. 이런 전력을 지닌 고급 미술관 안에 도열한 현장 투쟁 사진들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이 희석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노순택 작가에 얽힌 논쟁점들을 새로이 떠올리게 된다. 광장에서 시민들의 절규를 안고 태어난 사진들이 왜 현장 아닌 제도권 미술관으로 직행해야 하는가. 시대 상황을 업고 변신을 거듭하는 그의 피사체들을 한국 다큐사진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다. 8월6일까지. (02)733-8949.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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