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그룹 뮌의 개인전이 차려진 아르코미술관 1층. ‘이동식 놀이공원’이란 콘셉트 아래 다기하게 움직이며 그림자들이 명멸하는 키네틱 조형물들의 난장을 펼쳐놓았다. 뮌은 재미와 기괴한 느낌을 함께 안겨주는 놀이공원과 극장의 꾸밈새를 재현해 이 시대 ‘공공’ ‘공동체’의 양가적 의미를 묻는다.
이 작가들은 촛불혁명 뒤 중요한 논제가 된 ‘공공성’을 낯선 이미지들로 풀어 보여준다. 그들의 전시장은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들을 본떠 만든 기괴한 기계 모형들이 끽끽 소리를 내며 움직이면서 사방에 그림자를 아롱지게 하는 공간이다. 그런 풍경이 오늘날 부유하는 공공성의 실체라고 작가들은 말한다. 68혁명이나 광주항쟁 같은 역사 속 공동체를 몸짓으로 재현한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틀어주기도 한다. 대개 말로서, 콕 집어 풀어내는 추상적 역사적 개념을 온갖 상상력을 불러들여 볼 수 있는 실체로 만들어내는 지난한 작업들이다. 그들은 왜 이런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작업하는 것일까.
독일에서 유학한 김민선, 최문선 부부 작가가 꾸린 그룹 ‘뮌’이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 차린 개인전은 이런 물음을 던지게 하는 전시 무대다. 1, 2층에 흩어진 스물다섯점의 작품은 현란하면서도 불길한 기운이 일렁거리는 놀이동산과 그림자 극장의 조형물들이다. 관람차, 회전목마 등에서 착안한 조형물들은 중절모나 화살표를 올려놓거나 공공을 뜻하는 영단어 ‘퍼블릭’ 등이 적힌 단어판 등을 붙인 채 모터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 움직임이 빛 속에서 그림자를 벽과 차양막 등에 내비치면서 기묘한 이미지들을 명멸시킨다. 희미한 조명 속에 끽끽거리는 작동음과 왠지 부실하고 헐렁해 보이는 조형물들의 뼈대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놀이기구의 스릴감이 실제로는 떨어지지 않을까란 불안감에서 비롯한다는 심리를 이 시대 공공성 또는 공동체의 의미와 잇닿도록 풀어놓은 것이다. 공공적 제도와 공공적 규칙이 사회적 안정이라는 외피와 다르게 개인을 억누르거나 정체성 혼돈을 부추기며 오작동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셈이다. 작가들은 이런 다기한 조형물 작업들을 ‘프랙털’ 개념을 빌려와 치밀한 구도로 배치하고 빛을 통해 그림자가 서로 겹쳐지게 하거나 명멸하게 하는 방식으로 공공의 관계성까지 이미지로 표현해낸다. 여러명의 배우가 몸으로 탑을 쌓거나 서로 뭉쳤다가 흩어지는 식의 몸짓을 반복하는 2층의 영상작업 ‘바리케이드 모뉴먼트’도 흥미롭다. 세계 근현대사에 아로새겨진 중요한 혁명적 사건 속 공동체의 상황에 대해 치밀하게 연구하고 당시 공동체의 상황과 사건의 전말을 안무를 통해 몸짓으로 담아낸 것이 주된 얼개다. 글이나 말로 풀어내기 마련인 서사적 상황을 시각적인 육체언어로 표출하려 한 시도가 돋보인다.
2층 전시장에 펼쳐진 6개의 영상결합 설치작업인 <바리케이드 모뉴먼트>의 한 장면. 특정한 가치와 의미를 지키려 했던 역사적 사건 속 공동체의 모습과 상황을 몸짓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뮌은 2000년 초부터 지금까지 역사와 기억, 군중과 공동체 등의 현실적 화두에 대한 관심을 영상, 설치작업 등의 조형적 틀거지 속에서 풀어왔다. 2015년 코리아나미술관 전시에서는 역사 속 기억의 파편들을 반원형 그림자 극장을 통해 보여줬고, 지난해 파라다이스집 개관전에서는 한국 미술판의 권력지형도를 전구알들이 연결된 네트워크 모형으로 형상화했다. 그들의 첫 공공미술관 전시인 이번 개인전에서는 그들이 고민해왔던 화두들을 총체적인 극장 퍼포먼스 개념으로 소화하면서 자신들의 작가주의를 좀더 분명하게 드러냈다. 2층의 아카이브 방의 탁상과 서랍에 꼭꼭 들어찬 방대한 아카이브 작업 자료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뮌의 작업은 이미지 구현을 위한 오랜 동안의 분석 연구에 바탕한다. 전시된 작품 수가 너무 많은 탓에 빛과 그림자들이 혼란스럽게 명멸하는 전시장 속에서 전시 의도가 관객에게 충분하게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스럽다. 하지만 직설을 피하고 에둘러 가며 최대한 미학적으로 현실을 관찰하고 반영하려는 ‘태도’는 이 전시의 주목할 만한 미덕이다. 20세기 현대미술가들이 견지해왔던 작가적 태도를 정신없는 디지털 시대에도 고수하려는 유별난 자의식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9일까지. (02)760-4850.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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