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양심수 석방 문화제’ 음악감독 맡은 윤민석씨
지난달 7일 시민사회단체들이 결성한 양심수석방추진위원회는 오는 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 ‘양심수’ 37명의 석방을 촉구하는 문화제를 연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양심수 석방문화제-박근혜가 가두었던 그들이 돌아온다’ 포스터에 낯익은 이름 하나가 보인다. 음악감독을 맡은 윤민석(53) 작곡가다. 올해로 민중가요를 만든 지 30년이 됐다는 윤 감독을 지난달 2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지난 겨울 광화문을 달군 ‘촛불’의 또 다른 주인공은 윤 감독의 노래였다. 그가 만든 ‘헌법 제1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이게 나라냐 ㅅㅂ’ 등의 노래는 촛불 시민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시민들은 그의 노래로 힘을 얻었고,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시민단체 문화제에 공식 직함을 가지고 참여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는 지난 20여년 자신의 삶을 고슴도치의 그것과 견줬다. “1992~95년 세번째 옥살이를 한 뒤엔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혼자 활동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그들이 부담을 느끼고 나 또한 상처를 입기 때문이죠.” 그는 92년 이른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돼 북한 체제를 찬양한 노래를 만든 혐의로 구속됐다. 이 상흔은 그가 세상 속으로 나아가려 할 때마다 발목을 잡았다. 2001년에 민중음악을 보급하는 ‘송앤라이프’ 사이트를 만들어 대중과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이도 5년 만에 접었다. 아내가 2008년 유방암이 재발한 뒤로는 일상의 중심은 아내 간병과 고1인 딸을 돌보는 일이 됐다. 지금은 서울 영등포의 후배 작업실 한쪽을 빌려 쓰고 있지만, 가끔 들르는 정도다.
8일 광화문광장 시민 문화제 첫 참여
“촛불시민들에게 양심수 37명 알리려”
우위영씨 ‘옥중 곡’으로 만든 노래 첫선 중3 연합고사 우병우와 공동1등 ‘수재’
한양대 ‘소리개벽’ 때 민중가요 처음 작곡
“내 노래는 버려지는 것…30년 기념 무의미”
이번에 고슴도치의 삶에서 잠시 벗어난 이유를 물었다. “촛불 때 제 노래가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이 문화제도 촛불의 연장이라고 봤어요. 제 노래를 아껴준 사람들에게 박근혜 정권 아래 이런저런 이유로 갇힌 사람들이 여전히 감옥에 있다는 걸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문화제는 ‘촛불 사회자’ 박진·김덕진·윤희숙씨가 함께 진행하고 꽃다지, 우리나라, 이한철 등이 출연한다. 아카펠라팀인 아카시아가 윤 감독의 노래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를 부른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우위영씨가 옥중에서 만든 곡에 우씨의 동생이 가사를 붙인 ‘봄’이란 노래도 불려진다. 우씨는 포크그룹 ‘노래마을’에서 활동한 가수였다.
윤 감독은 유명 작곡가이지만 수입은 거의 없다. 창작곡은 모두 무료 공유하고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인들과 의사인 동생의 도움으로 살고 있어요. 가끔 페북에 새로 작업한 곡을 올리면서 후원 계좌번호를 적어 놓기도 하죠.”
그가 만든 첫 민중가요는 87년 5월에 작곡한 ‘사랑하는 동지에게’이다. 한양대 노래패 소리개벽을 만들어 활동하던 때였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 노래패 2년 후배이기도 하다. ‘30돌 기념’을 말했더니 고개를 저었다. “작년 중반부터 음반, 콘서트, 노래이야기 책 제작과 같은 제안들이 나왔어요. 안 하겠다고 했어요. 내 노래는 잠시 기능하고 어차피 버려지는 것이죠. 대중들이 ‘그때 그런 노래 있었지’ 그렇게 기억하면 됩니다.”
13년 전 인터뷰했을 때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노래로 ‘전대협 진군가’를 꼽았다. 지금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입니다.” 간결하면서 단박에 마음에 꽂히는 노랫말은 어떻게 썼을까? “별거 아닙니다. 시위 손팻말에 쓰인 글귀나 미사 때 신부님이 말하는 성경 구절을 모았어요. (세월호 싸움이) 하루이틀 사이에 끝날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침울한 가운데서도 불경처럼 옆에 틀어놓으면 힘과 위로가 되는 밝은 노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거리의 국민가요 ‘헌법 제1조’의 경험을 살려 “노래가 끝나기 전에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지난 촛불 때 일대 장관이었던 소등 퍼포먼스의 마무리도 이 노래의 몫이었다. “현장에서 들으면 제 노래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아내는 광장히 뿌듯하게 생각했죠.” 민중가요 창작 비결을 묻자, “30년 요 짓을 해온 숙련공으로서의 감” 덕분이란다. 그는 세월호 참사 때 두달 동안 작업실에서 꺼이꺼이 울며 미친 듯이 지냈다고 했다. 그런 고통 끝에 희생자 305명의 이름이 모두 나오는 ‘이름을 불러주세요’란 노래가 나왔다.
그는 경북 영주의 수재였다. 중3 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나란히 연합고사 점수 199점(200점 만점)을 맞고 영주고에 전교 1·2등으로 입학했다. 나이가 어린 우 전 수석이 1등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장학생으로 한양대에 들어간 뒤 5·18의 진실과 만나면서 운동의 길을 걷게 된다. “광주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전두환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증오가 제가 조직운동까지 하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두 개의 사건으로 5·18과 4·16을 꼽았다.
윤 감독에게 민중음악이란? “천민자본주의 세상을 살다보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양심의 우선순위가 아래로 내려갑니다. 이걸 한 단계씩 올려내는 게 민중운동이고 민중가요죠.”
그는 생활의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아내가 2011년 병원에 입원했을 때 대리기사나 한식집 홀서빙을 해 병원비에 보탰어요. 그때, 이십몇년 만에 처음으로 ‘운동’을 한 걸 후회했죠.” 그해 돈을 벌려고 강백호(예명) 트로트 앨범(<불타는 고백>)을 만들기도 했다. “홍보를 제대로 못 해 쫄딱 망했어요. 제 이름을 팔면 가수가 다칠 것 같아 작곡자 이름도 숨겼죠.”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고 김남주 시인의 시 ‘돌멩이 하나’ 중). 그가 지난 30년 동안 마음속에 품고 다닌 시이다.
*양심수 석방문화제 다음스토리펀딩 주소(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24267#).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윤민석 작곡가는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보면서 오히려 “착잡했다”고 했다. “이젠 아는 사람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박근혜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면서 “(블랙리스트 파문이) 많은 창작자들이 정부 지원시스템의 완전한 포로가 되고 있음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촛불시민들에게 양심수 37명 알리려”
우위영씨 ‘옥중 곡’으로 만든 노래 첫선 중3 연합고사 우병우와 공동1등 ‘수재’
한양대 ‘소리개벽’ 때 민중가요 처음 작곡
“내 노래는 버려지는 것…30년 기념 무의미”
양심수 석방 문화제 포스터.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