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전시장을 찾은 서울대병원 전문의 노동영 박사가 버스 속 승객들을 찍은 닉 베세이의 엑스레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그는 유방 질환 치료 분야의 권위자다.
“음, 이 사람은 골반 모양을 보니 여잔데요….”
지난 4일 낮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7전시장. 엑스레이로 찍은 사진작품들을 살펴보던 전문의 노동영 박사가 즉석에서 진단하듯 분석을 내놓았다. 그가 성별을 가려낸 사진 속 사람들은 거대한 보잉 777기의 원통형 동체 안에 앉은 남녀 승객들. 버스 속 승객들을 찍은 다른 엑스레이 작품들도 본 노 박사는 승객들의 모습이 한 사람의 뼈를 다시 복제해 만든 합성이미지라는 것까지 간파해냈다. 주위의 관객이나 설명을 하는 도슨트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의 눈길을 좇았다.
이런 풍경은 지난달 22일부터 이곳에서 <한겨레> 주최로 진행 중인 ‘엑스레이맨 닉 베세이’전(8월27일까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사람과 사물의 속내를 훤히 투시하는 엑스선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는 얼개이다 보니, 의사 등 의료계에 종사하는 관객들이 남다른 안목(?)을 과시하는 자리가 되고 있다. 의사 관객이 전시무대에서 나름 특별한 조연으로 한몫하고 있는 셈이다.
전시장엔 20여년째 엑스레이로 사람과 사물, 세상을 찍어온 영국 엑스레이아트 대가 닉 베세이의 작품 120여점이 나와 있다. 의사 관객들이 눈길을 많이 주는 작품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등장하는 사진들이다. 뼈의 부분 모양을 통해 성별과 나이 등을 즉석에서 어림잡아보는 의사들이 종종 눈에 띈다. 카트를 끌고 가는 할머니의 다리를 찍은 사진을 보고 골다공증 징후가 보인다거나, 하지정맥류 등의 증상이 보인다고 수군거리는 의학도들도 있다. 노동영 박사는 “병원에서 늘상 보는 의료용 엑스레이 차트보다 훨씬 손길이 많이 들어갔고, 대상도 사물, 기계, 꽃 등으로 폭넓어져 색다르고 신비스런 감흥이 와닿았다”며 “의사들이 보면 더욱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전시”라고 평했다.
전시틀이 독특하다 보니 이를 살린 아트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엑스레이아트 작품을 넣은 스카치테이프, 노트, 시선의 이동에 따라 엑스레이 이미지가 변하는 렌티큘러 스타일의 엽서, 투명필름에 엑스레이아트 작품을 인쇄한 필름엽서 등은 벌써 매출액 1000만원을 넘겼다.
한편, 주최 쪽은 14일 남녀 연인 10쌍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이벤트 ‘19금 도슨트’를 마련한다. 전시 중인 닉 베세이의 작품 120여점에 담긴 에피소드 가운데 아직 알려지지 않은 ‘19금’ 내용이 이번 이벤트를 통해 공개된다. 큐레이터가 직접 진행하는 ‘19금 도슨트’는 페이스북에 사전 신청한 연인 10쌍이 참석할 수 있다. ‘엑스레이맨 닉 베세이’전 공식 페이스북(facebook.com/haniculture)에서 8일부터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참석한 10쌍에게는 당일 추첨으로 고급 와인, 영화관람권 등을 선물한다. (02)710-0747, 0748.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전시사무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