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바이스전이 열리고 있는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시장. 치바이스의 1948년작 <채소와 풀벌레> 앞에 최정화 작가의 신작 설치작품인 배추 담은 리어카를 통째로 들여다놓았다.
그의 붓질이 끌린 자국엔 만물의 숨결이 남는다. 그것이 감동이자 기쁨이 된다.
20세기 중국 화단 최고 거장으로 꼽히는 치바이스(제백석, 1864~1957)의 다종다양한 그림들은 한결같이 강인한 생명력과 생동하는 현장성을 품고 있다. 집게발과 촉수를 늘어뜨린 새우떼의 탄력 있는 몸체와 촉촉한 물기, 채소와 연꽃 같은 화초들에서 전해져오는 텁텁한 흙 기운, 과일을 갉아먹는 쥐의 모습 등에서 미물이지만 안간힘을 다하는 생명의 약동이 전해져온다. 인물화에서 배경 외에 인물을 사라지게 만드는가 하면, 깔깔한 필묵의 선 대신 흥건한 먹놀림으로 산야와 사물, 미물의 미세한 형상까지 단번에 묘사하는 전위적 경지까지 선보였다.
중국 후난성 샹탄의 가난한 농촌 집안에서 태어나 생계를 위해 목공일을 하다 화가로 전업한 이 대가는 평생 한시와 그림, 전각을 갈고닦는 배움과 깨침의 인생을 살았다. 중국 전통회화의 기반 위에 20세기 현대회화의 추상정신과 현실주의를 접목시켰지만, 인간적인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았고, 부패군벌과 일제 침략자들에겐 굽신거리지 않고 단호하게 처신했다. 이응로, 김기창, 김영기, 송영방 등 1960~70년대 후대 한국화가들에게 현대 동양회화의 새 길을 제시해준 스승이었던 이가 치바이스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2층 전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치바이스: 목장에서 거장까지’(10월8일까지)는 20세기 한·중·일 화단의 큰 스승으로 추앙받는 치바이스의 수묵 그림들을 내걸었다. 한-중 수교 25돌을 맞아 한한령 냉기류 속에서 성사된 전시는 신문인화를 개척하며 중국 근현대 회화사의 구도를 바꾼 그의 발자취를 조명한다는 취지 아래 중국 후난성박물관 소장 그림 50점과 현지 치바이스기념관 소장 유품과 자료 80여점, 국내 소장 글씨 3점, 한·중 작가들의 오마주 작품 40여점을 내놓았다.
한국, 일본 전통화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장 치바이스. 말년 모습을 찍은 근영.
아쉽게도 전시는 중국 최고 대가의 국내 첫 대형 기획전이라는 주최 쪽의 주장에 어울리지 않는다. 품격이 크게 떨어진다는 말이다. 19세기 말 목공예에서 시작해 전각과 시서화를 거쳐 대작산수, 초충도, 풍속인물로 더욱 깊어져간 치바이스의 연대기적인 대표작들을 두루 망라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결정적인 맹점이다. 그의 대표적인 수작과 대작들은 중국 베이징, 대만의 국가박물관과 랴오닝성 박물관 등에 흩어져 있는데, 극히 일부분인 후난성박물관 컬렉션을 가져온 전시를 획기적인 대표작 전시처럼 내세우는 것은 지나친 포장이다. 작품 구성에서 기획자의 사려 깊은 해석과 개입의 흔적도 별반 보이지 않는다. 컬렉션 중 수작들로 보이는 몇몇 작품을 서두에 내놓고 후반부 공간은 한·중 서예가들 근작과 사석원, 최정화씨 등 현대작가들의 오마주 작품들로 채운 것도 보기 민망하다. 치바이스의 40년대 배추 그림 옆에 최정화 작가의 신작 배추 리어카를 맞붙여 놓거나 그의 게, 새우 그림 옆에 사석원 작가가 유화로 그린 게와 새우 등의 대작을 맞대어 걸어놓은 건 도상의 비슷함만 보고 배치한 인상이 짙다. 미술사적 맥락 등이 거의 고려되지 않은 난센스에 가깝다.
가난 속에서 현실의 미학과 인간미를 발견해 평생의 좌표로 삼은 치바이스는 형식주의를 극도로 싫어했다. 이 특별전에서 치바이스가 경멸한 겉치레 작품전시의 전형이 연출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들머리에 국내 주요 일간지와 잡지의 전시 소개 기사들을 다닥다닥 붙여놓은 데서 주최 쪽의 인식 수준이 드러난다. 미술판에선 전 정부 시절 ‘낙하산’ 임명돼 퇴진 압박을 받아온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이 실적 과시를 위해 전시를 홍보수단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뒷말까지 나오고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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