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대륙에 흔했던 여행비둘기가 멸종한 지 100년 되던 해인 2014년, 장노아 작가는 세계의 초고층 건물과 멸종위기 동물을 다루는 작업을 시작했다. 남종영 기자
“이스터섬의 마지막 나무를 자른 사람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문명사가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어느 날 강연에서 한 학생에게 질문을 받았다. 이스터 문명은 각 부족이 경쟁적으로 모아이 석상을 세우면서 붕괴했다. 석상을 굴려 운반하기 위해서는 나무가 필요했고, 숲은 남벌되어 나무 한 그루조차 남지 않았고, 섬을 탈출할 뗏목 하나 만들지 못하고 이스터 문명은 붕괴했다.
중견 작가 장노아(43)의 ‘미싱(Missing)-세계 초고층 빌딩과 사라지는 동물들’ 연작은 폐허가 된 이스터섬을 걷는 작업이다. 이스터섬은 근대 자본주의 이후 동물의 삶터를 점령한 도시를 상징한다. 초고층 건물이 솟아 있는 도시를 한 소녀와 멸종(혹은 멸종위기의) 동물이 주유한다. 지난해 펴낸 책 <미싱 애니멀즈>와 <한겨레> 연재를 통해 공개한 작품에 신작을 더해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싱’전에서 33점을 선보였다.
지난 6일 인터뷰에서 장노아 작가는 도시를 걸으며 과거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땅의 주인으로 착각하지만,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이기 이전 수많은 생명이 살았지요. 도시가 크면 클수록 더 마음이 아파요.”
동물과 소녀만 남은 미래 도시
장노아의 작품은 오묘한 느낌을 준다. ‘멸종위기종을 살리자’는 포스터처럼 직접적이지 않다. 낭만적인 폐허미가 작품을 지배한다. 소녀와 멸종동물. 생명체는 딱 둘이다. 도시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동차와 건설기계는 멈췄고, 지구를 떠나는 우주선(대왕판다와 중국 시틱플라자)만이 유일하게 누군가 있었다는 근거다.
소녀는 도도새와 여행비둘기, 숌부르크사슴, 한국표범, 대왕판다 등과 함께 빈 도시를 주유한다. 도시에는 부르즈 칼리파, 상하이타워,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배경으로 솟아 있다.
장 작가는 “2014년 여행비둘기(나그네비둘기) 멸종 100년을 다루는 짤막한 기사를 읽고 초고층 건물과 멸종동물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불과 150년 전만 해도 북미의 하늘을 까맣게 덮을 정도여서, 아무도 멸종할 거라고 생각지 않았던 새다. 스포츠 사냥이나 값싼 단백질 보충원으로 이용됐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사망률이 번식률을 앞지르며 균형이 무너졌고, 여행비둘기는 감쪽같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1914년 미국 신시내티동물원에서 여행비둘기 ‘마사’가 죽으면서 이 종은 사라졌다. 근대 멸종사 중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이다. 장 작가는 “이전에는 자신의 예술적 성취만을 위해 작업하고 전시했지만, 크라우드펀딩 등 대중과 공유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828m)와 여행비둘기, 76×56cm, 종이에 수채, 2014.
그의 작품에서 시공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접혀 있다. 동물은 멸종위기의 현재를 상징하며, 동물이 선 폐허의 도시는 미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동물은 숲이 아닌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다. 누런색 계통의 수채물감을 칠한 뒤 몇 차례 문지르는 기법을 썼다. “먼지처럼 사라질 것들이란 생각에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의 느낌을 냈다”고 장 작가는 말했다.
다른 종의 죽음을 애도하다
그는 동물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지인이 대형마트에 햄스터 등 동물을 유통하는 일을 했는데, 버려지는 동물을 거둔 적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햄스터 한 마리에 8000원인데, 햄스터 집은 1만2000원인 거죠. 집을 팔기 위해 햄스터를 파는 거죠. 값싼 동물은 아파도 치료해주지 않고 죽을 때까지 놔둡니다.”
그의 에너지를 추동하는 것은 ‘빚진 마음’이다. “다른 생명에게 미안한 마음”과 “인간의 죄 된 속성에 대한 관찰과 반성”이 작품으로 이어진다.
“어릴 때 마당에서 키우던 누렁이 ‘아롱이’가 새끼를 낳았어요. 한 마리만 남고 차례로 죽었어요. 예방주사니 전용 사료니 이런 개념이 없던 때였죠. 학교에 갔다 오면 새끼 ‘아돌이’가 오뚝이 앉아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느 날 아돌이가 없어졌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가 동네 아저씨와 잡아먹은 거였어요. 얼마 뒤 아롱이도 죽었어요. 누군가 밥에 쥐약을 탔어요. 엄마가 시끄럽고 냄새난다고 불평하던 아랫집 사람들이 그런 것 같다고 했어요.”
쿠웨이트 알함라타워(412.6m)와 오록스, 76×56cm, 종이에 수채, 2015.
공사 중인 상하이타워(632m)와 도도새, 76×56cm, 종이에 수채, 2014.
성남아트센터에서 10월1일까지 전시회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도시인은 동물을 키우지만 불편한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도시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욕망이 중첩되어 가장 높은 곳에 이른 게 초고층 건물이다. 세계는 경쟁적으로 초고층 건물을 짓고 있다. 15일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 통계를 보면, 300m 이상 초고층 건물은 지난해 두 자릿수에 진입했고, 현재 123개에 이른다. 가장 높은 건물은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828m), 서울의 롯데월드타워는 5번째다. 초고층 열풍을 이끄는 핵심은 중국 등 아시아와 중동이다. 초고층 건물 123개 중 아시아 68개, 중동 29개로 3분의 2를 차지한다.
<모래군의 열두달>에서 알도 레오폴드는 “한 종이 다른 종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하늘 아래 전에는 없었던 일”이라고 썼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이스터섬의 마지막 나무를 베면서 사람들은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풍경 기억상실’이라는 말을 썼다. 마지막 매머드를 죽인 크로마뇽인은 오직 고기만 생각했고, 도도새를 때려잡은 포르투갈의 선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장노아 작가는 풍경 기억상실증에 걸린 도시인들에게 이 자리의 주인이 누구냐고 묻는다.
장노아 작가를 만난 곳은 경기 성남이었지만 거기서도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가 보였다. 555.7m. 성남공항 안전 문제 등 논란 끝에 결국 허가를 받아 완공된 이 초고층 건물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 모아이 석상은 지금도 세계 여기저기서 세워지고 있다. ‘미싱’(Missing)은 10월1일까지 열린다. 장노아 작가의 연작과 이창원 작가의 ‘평행세계’, 성실화랑의 멸종위기 동물 그래픽 아카이브 등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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