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임시변통’전에 나온 이동욱 작가의 설치 작품. 모로 세운 작업용 사다리 위로 함석, 비닐 등으로 허접하게 만든 물길이 지나간다. 작업실에 비가 새서 둘러막아야 했던 절박한 경험을 떠올리며 구상했다고 한다.
‘임시변통’. 고도성장기를 거쳐온 한국 사람들이 특기처럼 추어올리곤 하는 말이다. 그때그때 터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일을 갈무리한다는 뜻인데, 시간이 별로 없고 여건이 형편없어도 맡겨진 일을 뚝딱 해치우는 역량이나 자세를 자부심을 곁들여 표현할 때 흔히 쓴다.
여전히 우리 삶을 관통하는 요령이자 지침처럼 여겨지는 ‘임시변통’을 미술의 시각언어로 표현하면 어떤 꼴들과 장면들이 나올까? 미술판 독립기획자 임종은씨가 이 공상을 전시 난장으로 옮겨놓았다. 철공장이 밀집한 서울 영등포역 남쪽 문래예술공장에서 지난주 시작된 기획전 ‘불멸의 임시변통’이 그 자리다.
‘안전제일’ 표어가 천장 부근에 붙은 공장 같은 전시장의 100여평 공간에는 소장 작가 4명과 1팀이 제각기 풀어낸 임시변통 작업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가장 깊숙한 안쪽에 설치된 소장 조각가 이동욱씨의 신작 <깊고 넓은>, <길고 가는>이 눈에 확 들어온다. 작가는 모로 세운 금속 사다리의 프레임 위로 물길을 틔웠다. 공사장 ‘갑바천’에서 함석판과 폐비닐로 엮은 수로를 타고 작은 물줄기가 졸졸 흘러 수조로 내려온다. 툭 건드려도 쏟아질 듯 허접한 얼개다. 아슬아슬하게 틔운 물길을 보노라면 왠지 모를 비애감, 긴장감도 와닿는다. 어디론가 물을 뽑아내어 수조로 보내야 한다는 간고한 의지가 비쳐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작업실이 비가 새는 탓에 수시로 물길을 틔우거나 새는 곳을 막아야 했던 절박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작가는 털어놓았다.
일본 작가 시타미치 모토유키는 여행 중 수집한 돌덩이를 늘어놓았다. 아이치현에 있는 자기 집에서 대마도를 거쳐 한국의 남해안을 돌아 서울로 오기까지 만난 여러 지역 주민들이 일상에서 임시방편의 도구로 써온 돌의 다양한 쓰임새를 조사한 뒤 그 내력을 담아 돌 사진집을 만들었다. 여행 중에 주운 돌 30개를 이 사진집에 끼워넣어 개당 3만원에 팔고있는 것까지 작업에 포함된다. 관객들로 하여금 돌의 쓰임에 대한 공상을 자극하려는 의도다.
김월식 작가는 한국 근대화의 산물인 뾰족한 교회 종탑을 변통의 대상으로 보고, 미니 나무조형물로 축소해 만든 뒤 늘어세워 ‘겸허한 높이’에서 근대화의 명암을 반추할 수 있도록 했다.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고 포장하고 쌓아놓는 과정들을 자잘한 물건들의 컨베이어벨트 설치물로 재현한 최제헌 작가의 설치 작업들도 이채롭다. 임 기획자는 “전시장 자체도 기획자에게 정해진 기간 안에 임시변통을 요구하는 공간”이라며 “임시변통의 작업 행위를 통해 불변성을 추구하는 작가들의 예술적 성찰과 대응 방식을 살펴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오는 10일까지. (02)2676-43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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