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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콘크리트 만능시대’ 깨뜨리려 했던 건축운동사

등록 2017-10-12 18:28수정 2017-10-18 17:27

국립현대미술관 첫 한국현대건축사 기획전 ‘종이와 콘크리트’
87년 이후 사회성, 작가성 의식한 건축운동그룹 영상, 자료로 정리
자료발굴 아카이브에만 치중 의미, 맥락 못짚는 한계도
콘크리트의 미학적 잠재력 보여주는 덴마크 건축계 전시도 눈길
전시의 도입부인 3전시실 모습. 1987~97년 국내 건축운동 흐름을 긴 탁자 6개 위의 자료, 모형들로 펼쳐놓고 그 위쪽은 당대 사회적 사건, 풍속도가 흘러가는 대형영상물 투사막 지붕으로 씌웠다.
전시의 도입부인 3전시실 모습. 1987~97년 국내 건축운동 흐름을 긴 탁자 6개 위의 자료, 모형들로 펼쳐놓고 그 위쪽은 당대 사회적 사건, 풍속도가 흘러가는 대형영상물 투사막 지붕으로 씌웠다.
‘건축판에도 운동권이 있었나?’

촛불혁명과 정권 교체 이후로 1980~90년대 진보적 문화예술 흐름에 대한 재조명이 유행처럼 이뤄지고 있지만, 건축 분야만은 유독 냉소가 앞선다. 민주화 요구가 봇물을 이루던 1987년 6월 항쟁 이후 1990년대 중후반까지의 전환기에 건축계의 태도는 안일했다. 미술, 문학, 공연 같은 다른 문화 장르들처럼 치열하게 한 시대를 통과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청년건축인협의회, 4·3그룹 등 역사와 사회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대안적 건축을 표방한 여러 모임들의 결성과 논의가 이어지긴 했다. 하지만 당시 흐름은 지금 ‘종이 문건’으로 대표되는 자료집, 책,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이들의 담론과 논의는 1997년 불어닥친 금융위기 광풍과 건설토목 경기의 부침 속에 묻혀버렸다.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 3, 4전시실에 차려진 대형 기획전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은 20~30년전 우리 건축의 안쓰러운 고뇌들을, 덩치는 우람하고 내용은 난해한 틀거지로 드러낸다.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변혁기 건축계의 고투와 노력을 보여주려는 취지다. 1987년 6월 항쟁 뒤 결성된 청년건축인협의회를 필두로, 수도권지역건축학도협의회(수건협), 4·3그룹,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건미준) 등 당대 건축집단들의 활동상이 아카이브와 영상으로 펼쳐져있다.

3전시실 들머리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6월 항쟁 당시 가두투쟁과 1990년대 소비문화, 엑스세대 등장, 외환위기 등의 당대 세태를 담은 사면의 대형 스크린 지붕 구조물이다. 그 아래 6개의 길쭉한 테이블에 10여개 건축운동 집단의 활동상을 정리한 문건과 책, 그리고 주요 작가들의 건축물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이 기본 아카이브 얼개를 바탕으로 4전시실에서 당시 주요 참여건축가들이 털어놓는 회고와 활동 방향에 대한 심층 자료들이 계속 추가되고, 기획자가 분석한 개념나무를 통해 당시 건축계의 담론 지형도를 벽면에 붙인 이미지 그래픽 자료들이 선보이고 있다. 국립미술관에서 한국 현대건축사를 주제로 이렇게 스펙터클한 영상과 공간을 동원한 대규모의 전시를 꾸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기획자는 한국 건축의 1990년대 양상들을 포스터, 출간물, 자료들을 발굴하며 공들여서 배치했고, 관계자 증언과 당시 사회적 단면들을 담은 대형 영상물을 결합시켜 외양이 치밀하고 방대한 한국 건축사의 풍경을 완성해 놓았다.

서울 서촌 온그라운드갤러리 전시장에 나온 덴마크 건축가들의 콘크리트 조형물 작품인 <콘크리트 무브>의 일부분. 유동적인 콘크리트가 양생을 통해 단단해지는 과정에서 로봇의 조작에 의해 생긴 규칙적 문양을 부각시킨 작품이다.
서울 서촌 온그라운드갤러리 전시장에 나온 덴마크 건축가들의 콘크리트 조형물 작품인 <콘크리트 무브>의 일부분. 유동적인 콘크리트가 양생을 통해 단단해지는 과정에서 로봇의 조작에 의해 생긴 규칙적 문양을 부각시킨 작품이다.
전시장을 덮은 거대 영상들은 사실 전체 맥락에서 그렇게 절실한 요소들은 아니다. 일반 관객이라면 3전시실 들머리에 있는 박정현 건축평론가와 이종우 명지대 교수의 1990년대 건축운동 흐름에 대한 대담 영상만 봐도 기본적인 내용은 대체로 짐작할 수 있다. 국외여행 자유화로 촉발된 외국 건축유산 답사 유행과 서구 모더니즘 건축의 재조명, 서울건축학교 등 건축교육 개혁을 위한 성과물 등을 언급한 부분들이 대부분 대담에서 제시된다. 관건은 당시 건축운동에 관여한 이들이 무슨 생각을 했으며 어떻게 자신들의 의지를 풀어내려다 좌절했는지 그 전말과 평가, 맥락 등을 보여주는 부분일텐데, 전시는 이후 부분에서 아카이브만 계속 확대하다가 마무리를 지어버린다. 독재정권의 기념비적 건축의 시녀로 봉사하거나 부동산 경기를 업고 이권을 챙기는 업자의 처지를 벗어나, 사회적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설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던 주요 운동그룹 건축가들의 고뇌가 만져지는 지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로 남는다. 당대 사회상을 담은 스펙터클한 영상이나 중견 원로건축가들의 확대된 인터뷰 영상들은 고뇌만 앞서고 실천은 빈약했던 한국건축 집단운동의 시상을 증언하는 역설의 소품이 된 셈이다. 내년 2월18일까지. (02)3701-9500.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서울 서촌 온그라운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덴마크 건축계의 ‘콘크리트 실험’전은 차갑고 메마른 인상으로 다가오는 콘크리트 재료의 미학적 실용적 잠재력을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표피, 형태, 구조 섹션으로 나뉜 전시는 로봇, 시뮬레이션 기술 등을 토대로 조형성과 기능을 마음껏 살린 콘크리트 재료의 다양한 실험적 양상들을 덴마크 건축가들의 성과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11월11일까지. (02)720-826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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