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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쇠·철·강, 가장 강력했던 권력의 이름

등록 2017-10-15 15:17수정 2017-10-15 21:02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 ‘쇠·철·강: 철의 문화사’
한중일 등의 철 문화사 관련 유물 730여점 전시
역사 속 철의 면모를 ‘권력’과 ‘삶’ 주제로 풀어
‘쇠·철·강: 철의 문화사’전에 나온 중국 퉁거우 12호분 고구려 벽화 무덤의 개마무사 모사도. 아래에 있는 갑옷 실물들은 신라, 가야의 투구와 목·팔 가리개다.
‘쇠·철·강: 철의 문화사’전에 나온 중국 퉁거우 12호분 고구려 벽화 무덤의 개마무사 모사도. 아래에 있는 갑옷 실물들은 신라, 가야의 투구와 목·팔 가리개다.
세 갈래로 갈라진 거대한 갈고리창은 검붉은 빛이었다. 1000년 이상 세월이 지나 녹덩어리가 군데군데 달라붙었지만, 결연한 투쟁심이 표면에서 번뜩인다. 1400여년 전 백제의 마지막날 병사들은 이 창을 들고 신라와 당의 대군 앞으로 돌진했으리라.

백제 마지막 고도 부여 부소산성 터에서 출토된 철제 무기들은 장대한 크기와 위용이 대단하다. 촉머리 두꺼운 화살촉과 대형 쇠낫, 양갈래창, 갈고리창, 투겁창 등은 백제 특유의 우아한 문화예술이 고도의 철제 무기를 갖춘 국방체제 아래 피어났음을 일깨워준다.

백제의 인상적인 무기 갖춤들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의 기획전 ‘쇠·철·강: 철의 문화사’(11월26일까지)에 나왔다. 인류사에서 철기의 태동과 변천상을 우리 역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 전시다. 1~3부로 나눠 꾸려진 진열장들엔 죽음과 삶의 이미지가 엇갈리며 울렁거린다. 전쟁의 가장 유력한 수단인 철제 무기, 그리고 생활도구들이 출품 유물의 쌍벽을 이룬다. 곳곳에서 피 비슷한 쇠 냄새도 난다. 운철(철 성분의 운석)을 실제로 가져와 손으로 만지며 내음을 맡게 했다. 운철에서 고대 이집트인과 히타이트인들은 철을 뽑아내 최초의 철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전시의 핵심은 1부 ‘철, 인류와 만나다’라고 할 수 있다. 푸석푸석한 철광에서 단단한 철을 만들기 위해 갖은 궁리를 짜낸 고대인들의 흔적을 보게 된다. 탄소 함유량 0.2~2.1% 사이가 강철이고, 2%대 이상이면 주철(무쇠), 0.2%대 아래면 유연한 연철이다. 경기 오산 수청동에서 나온 백제의 고리자루 큰 칼은 제강공정을 거친 강철이 들어간 당대 하이테크 검이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화약, 도자기처럼 강철 제련 기법도 한나라 때 숙성시켜 유럽을 1000년 이상 앞섰다는 것, 그들의 강철 문물이 한반도에도 바람처럼 불어닥쳤음을 전한대 전래 철기들과 경산 임당동, 완주 갈동 유적에서 출토된 쇠도끼, 쇠낫, 쇠손칼 등의 연나라 철기를 보면서 알게 된다.

전시장에 진열된 고려, 조선 시대의 제의용 쇠말(철마)들. 주신으로 모시거나 신령에 바치는 봉헌물로 쓰였다. 종교의례에 철이 이용된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시장에 진열된 고려, 조선 시대의 제의용 쇠말(철마)들. 주신으로 모시거나 신령에 바치는 봉헌물로 쓰였다. 종교의례에 철이 이용된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부 ‘철, 권력을 낳다’는 철기에 자연히 따라오게 된 권력과 무기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 자체로 권력을 상징했던 5세기 고신라 황남대총 부장품 덩이쇠가 눈대목. 모두 쌓으면 63빌딩 높이가 되는 덩이쇠의 장대한 규모가 눈에 들어온다. 제일 시각적으로 도드라진 건 붉은빛으로 덮인 갑옷구 전시장. 들머리의 고구려 개마무사 벽화 모사도에 이어 양옆에 신라, 가야 시대의 투구, 몸갑옷, 팔가리개, 목가리개 등의 화려한 판갑옷, 찰갑옷들이 도열했다. 3부 ‘철, 삶 속으로 들어오다’는 삶, 예술, 신앙과 함께하는 철의 문화사다. 태안 침몰선에 실린 쇠솥과 김홍도 풍속화 등에 나왔던 철제 대패, 끌 등의 생활사 유물들이 스쳐간다. 제례에 쓰였던 고려시대 쇠말들이 떼로 나온 풍경도 쉽게 볼 수 없는 감상의 풍경이다. 말미 따로 된 방에는 충남 서산 보원사 터의 통일신라시대 수작 철불이 손이 사라진 채 신비한 미소로 관객을 맞아준다.

평화의 시대 철은 사찰의 불상 재료로도 두루 쓰이게 된다. 충남 서산군 보원사 터에 있던 철불. 조형미가 뛰어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수작 철불이다.
평화의 시대 철은 사찰의 불상 재료로도 두루 쓰이게 된다. 충남 서산군 보원사 터에 있던 철불. 조형미가 뛰어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수작 철불이다.
고대 철기는 한국과 일본의 고고학계에서 민족주의 사관과 결합되어 크게 중시되어왔다. 고대 철기의 태동과 주요 유물들의 연대 구분, 제철 방법 등에서 깊고 복잡한 논의들이 두 나라 학자들 사이에 넘쳐난다. ‘쇠·철·강’전은 이런 분야를 1년도 안 된 기간 동안 갈무리해 대중에게 보여주려고 안간힘을 쓴 전시다. 다만, 근현대기 철기 변천사를 지난 세기 초 한강철교 사진으로 뭉뚱그리거나 2010년 제철소 쇳물에 빠져 숨진 노동자를 추모한 댓글시인 제페토의 시구를 뜬금없이 출구 쪽 벽에 넣은 것은 ‘닭갈비’같이 보인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 12월19일부터 내년 2월20일까지 순회전이 이어진다. (02)2077-90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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