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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한국미술 등뼈였던 ‘국전’을 다시 본다

등록 2017-10-26 18:09수정 2017-10-27 17:27

기획전 ‘국전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미술’
1949~81년 정부가 연 국내 최대 공모전
파벌대립, 부패 등 오욕 이면 순기능 조명
‘국전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미술’전이 열리고 있는 금보성아트센터 1층 전시장. 1950~80년대 국전에  출품했던 한국화 작가들의 여러 가지  시도를 보여준다.
‘국전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미술’전이 열리고 있는 금보성아트센터 1층 전시장. 1950~80년대 국전에 출품했던 한국화 작가들의 여러 가지 시도를 보여준다.
이제 어떻게 그릴 것인가.

40~50년 전 국내 화단 작가들의 고뇌를 고단한 붓질 흔적으로 아로새겼던 그림들이 눈앞에 잇따라 나타난다. 종이에 침봉으로 구멍을 송송 뚫어 먹물을 스며들어 번지게 하면서 진득한 색감을 빚어낸 원로화가 민경갑의 수묵화는 여전히 전위성을 뿜는다. 형상을 거의 지우고 면과 선의 엉킴으로 화면을 메워버린 작고 작가 류경채의 그림은 날카로운 회화적 논리가 번득인다. 1950~70년대 화단을 휩쓸던 서구 추상그림 앞에서 한국적 회화에 대한 질문과 모색을 담았던 작품들이다.

요즘 서울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는 50~70년대 한국 미술판의 등뼈를 형성했던 국가 주도 전람회 ‘국전’의 지난날을 당대 출품작들을 보며 되새김하는 판이 차려져 있다. ‘국전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미술’ 제목이 붙은 기획전이다. 미술판에서 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한국현대미술사에 대한 전복적 해석작업을 벌여온 오상길 서울현대미술연구소장이 만들었다. 경직된 화풍을 강요하는 아카데미즘의 온상, 미술계 파벌들의 이전투구판 따위 오명을 쓴 채 미술사에서 외면당해온 국전 출품작들의 재조명과 복권을 위한 전시다. 기획자는 서구사조의 유입에 따른 문화 혼성의 양상이 작가마다 각기 다르게 반영되고 모색되면서 한국현대미술의 틀거지를 잡아나갔다는 관점을 내세웠다. 이런 틀 아래 국전에 입상했던 주요 작가들의 한국화와 양화 출품작 30여점을 재구성했다.

국전은 일제강점기 총독부 조선미술전람회를 본떠 1949년 제정된 뒤 1981년까지 지속됐다. 모두 4만여명의 작가가 응모하며 한국 화단의 대표 행사로 군림했다. 그러나 심사위원 인선을 두고 파벌 대립과 정실 수상 등의 고질이 뿌리 깊었고, 기존 화단의 구태를 보여주는 온상처럼 인식되면서 불신이 쌓이자 1982년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바뀌며 사라지게 된다.

전시에 나온 심경자 작가의 1980년 작 <가르마>(작가 소장)의 일부분.
전시에 나온 심경자 작가의 1980년 작 <가르마>(작가 소장)의 일부분.
전시는 이런 내력을 상세히 소개하지 않고 간추린 국전 작가들의 개별 작품들을 중심으로 국전의 면모를 훑는다. 1층에는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의 조선시대 전통진경산수를 출발점으로 놓고 한국화 작가들의 국전 출품작의 변화를 다루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서구 추상사조 물결 속에서 한국성과 자기 개성을 찾기 위해 번민한 양화가들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출품 규모는 30여점 정도지만, 보고 나면 새롭게 짚이는 특색들이 보인다. 무엇보다, 국전 하면 떠올리는 경직된 구도의 정물 인물화 못지않게 화면과 색채 등에서 치열한 조형 실험을 거듭한 작품이 상당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60년대 전면에 번지는 색채 화면으로 특징지워지는 서구 앵포르멜 사조의 영향을 감지하고 먹을 통해 이를 독창적으로 소화하려한 정탁영, 안동숙의 추상수묵화들과 전통 진경산수 구도에 유화물감을 칠하며 혼성적 화풍을 구축한 작고 작가 김원, 이종우의 풍경화 등이 그런 예들이다. 청명한 추상 화면에 불교적 세계를 접목시킨 하인두나 통영 작가 전혁림의 50년대 기하추상작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개별 작품과 별개로 전시는 빈틈이 허다하다. 30여점에 그친 출품작에 몇몇 복제프린트 그림만 더해 수천점이 입선한 국전의 방대한 미술사적 재조명을 전시에 구현하겠다는 것은 무리수에 가깝다. 조각, 사진 등의 다른 장르는 빠졌고, 60년대 국전에 반대하며 전위 미술을 부르짖은 반국전 세력과의 대결, 갈등의 역사도 다뤄지지 않았다. 기획자는 국전 출품작을 다수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대여 거부를 주된 요인으로 돌리면서 “큰 지도를 그리려 했는데, 약도만 그린 전시가 됐다”고 자평했다. 11월2일까지. (02)547-6049.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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