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독일 작센공의 보석, 도자기 컬렉션 한자리에
국립중앙박물관의 ‘왕이 사랑한 보물’ 특별전
바로크 독일 왕가의 역사 문화 생생하게 담아
당대 유럽 매혹한 중국·일본 도자기 컬렉션 국내 첫 전시
국립중앙박물관의 ‘왕이 사랑한 보물’ 특별전
바로크 독일 왕가의 역사 문화 생생하게 담아
당대 유럽 매혹한 중국·일본 도자기 컬렉션 국내 첫 전시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고 일컬어진 로마제국 황제들의 최고 상징은 태양이었다. 로마인들은 황제에게 바치는 가장 영광스러운 호칭을 ‘무적의 태양’이란 뜻의 ‘솔 인빅투스’(Sol invictus)라고 불렀다. 제국의 후예를 자처한 신성로마(오늘날 독일) 황제들과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 독일 제3제국의 히틀러까지 태양이 되겠다는 욕망은 면면히 유럽 권력사의 계보에 이어져 왔다.
9월부터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18세기 독일 왕실 명품전 ‘왕이 사랑한 보물’은 독일사에 드리워진 로마제국의 거대한 그림자를 보여준다. 1~3부 전시장에 나온 보석, 금은, 상아, 도자기 등의 바로크 예술품 130여점은 태양으로 상징되는 로마제국의 절대권력을 신성로마제국 제후들이 얼마나 갈망했는지를 이야기한다.
독일 드레스덴 박물관 연합이 소장한 컬렉션의 원래 주인은 작센의 제후이자 작센·폴란드 통합 왕조를 창시한 ‘강건왕’ 아우구스투스(1670∼1733)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선출권을 지닌 제후였던 그는 통합된 독일에서 로마 황제의 재림을 꿈꾸며 그 유용한 수단으로 당대 최고의 바로크 예술품들을 수집하고 드레스덴 궁전을 미술관처럼 꾸미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출품작 대부분은 ‘그린볼트’라고 불리는 궁전의 7개 방에 진열됐던 작품들인데, 당대 최고 수준의 조각, 공예 명품들을 망라한다.
도입부 진열장에서는, 사방으로 빛살을 내뻗는 황금빛 태양 가면이 관객을 쏘아본다. 가면의 주인공은 물론 제후 아우구스투스다. 당대 신성로마 제후국들 가운데 가장 부강한 국력과 문화를 과시했던 절대군주의 표정은 오묘하다. 미소를 띤 듯하다가도 일순 근엄하게 돌변하는 느낌을 주는 가면은 태양신으로 분장했던 프랑스 황제 루이 14세의 궁정 연희 영향을 받은 것으로, 당대 제후들이 가장 갖고 싶어한 로마 황제의 상징이었다.
뒤이어 100여개 보석으로 수놓아진 검과 화려한 장식이 박힌 사냥총 등을 보고 나면, 전시의 핵심인 금은보화, 상아 보석의 방으로 향하게 된다. 왕실이 직접 만들기도 했던 정교한 상아 수공예품과 은으로 빚은 아테나 여신상, ‘녹지 않는 얼음’이라 믿었던 조개 모양의 수정 용기, 바다 방석 고둥에 도금한 은으로 만든 여성 형상의 술잔 등이 바로크 세공술의 극치를 자랑한다. 유물 진열장 배경으로 붙은 사진 패널들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현지 궁전의 벽면과 실제 소장품을 미세한 부분까지 초점을 달리해 찍은 뒤 한 화면으로 합성한 초고화질 작업으로, 해상도가 놀랍다. 특히 인도 황제 아우랑제브의 연회장을 보석과 귀금속으로 재현한 대형 조형물을 찍은 사진은 로마 황제에 대한 제후의 선망을 색다르게 실감하게 하는 전시의 대표 이미지라 할 만하다.
또다른 눈대목은 당대 유럽 왕실에서 ‘시누아즈리’(중국 취향), ‘자포네즈리’(일본 취향)로 부르며 사들이는 데 혈안이 됐던 중국·일본 자기다. 이들을 모델로 유럽 최초의 자기를 만든 마이센 가마의 제작품들도 같이 나와 보는 재미가 풍성하다. 아우구스투스는 세계 도자기 역사에서 마이센 자기를 만들어낸 주역으로 유명하다. 전시는 그가 주도한 유럽 도자 혁신의 발자취를 국내 처음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중국 징더전 가마의 청화자기와 채색자기, 조선 도공의 후손들이 만든 일본 규슈의 이마리 채색자기 등이 도자기 궁전 방에 색깔별로 선보여 황홀감을 안겨준다. 관음입상과 밸러스터 병 따위의 중국 청대 자기와 이를 모방한 마이센요의 자기들을 나란히 비교 전시해 놓았고, 마이센 장인들이 독창적으로 만든 왕실 식기 세트 등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애호가들의 구미를 당긴다. 로마 따라하기에서 동양 명품 수집으로 권세의 자장을 넓혀간 당대 독일 왕족들의 예술 취향을 절절하게 훑어볼 수 있는 기획전이다. 26일까지. (02)2077-90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작센 대공으로 드레스덴 왕실 컬렉션을 꾸린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태양 가면(1709). 옛 로마 황제와 프랑스 황제 루이 14세의 태양 상징을 본뜬 작품이다. 황제의 권위에 대한 독일 제후들의 욕망과 집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장 중간에 있는 ‘상아의 방’ 모습. 상아의 방은 아우구스투스의 왕실 컬렉션 공간인 ‘그린볼트’의 두번째 전시실이었다. 상아를 세공한 바로크 시대의 조각, 공예품들이 벽면의 확대된 현지 전시실 패널 사진을 배경으로 선보이는 중이다.
전시장 안쪽의 ‘도자기 궁전’ 진열장 모습. 18세기 독일 작센 왕실이 입수한 중국 청나라의 채색 청화자기들과 당시 독일 마이센에서 유럽 최초로 빚어낸 같은 유형의 자기들이 비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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