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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가구만드는 목공일은 고통스러운게 매력이죠”

등록 2017-11-29 15:47수정 2017-11-30 10:52

양석중 소목장 목가구전 ‘미래의 전통’
노동운동하다 늦깍이 목수의 길 16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
콘솔 등 현대 맞춤가구로 유럽서 호평
소목장 양석중씨는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작인 먹감나무 삼층장(오른쪽)을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추천했다. 사진 노형석 기자
소목장 양석중씨는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작인 먹감나무 삼층장(오른쪽)을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추천했다. 사진 노형석 기자
켜고 말린 나무짝으로 전통 목가구를 만드는 ‘소목장’은 똑같은 작품들을 만들지 못한다. 작품마다 만들 때 기분, 마음가짐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만지는 재료인 원목 조각들의 나뭇결이 제각기 다른 까닭에 붕어빵처럼 찍어낼 수 없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목가구전 <미래의 전통>(12월4일까지)을 열고 있는 소목장 양석중(53)씨의 작업도 나무의 기본적 속성을 철저히 깨닫는 데서 비롯된다.

“전통은 가구, 옷, 종이 등의 다양한 옛 물건들을 기계적으로 이해하는 개념이라기보다 옛 장인이 지녔던 철학이라고 봅니다. 전통가구는 지금 생활공간에 어울리는 아름다움도 갖고 있어요. 제 작품들은 이런 미감들을 재해석해 현대성을 부각시키려 애쓴 것들입니다.”

원목 통판을 짜는 소목장은 업계에서 자리 붙이기 힘들다. 합판을 사용해 단시간에 대중적 취향으로 뽑아내는 공산품과는 가격 등에서 경쟁이 안된다. 주문 제작 틈틈이 창작품을 만들어야 하므로 전시회도 힘겹다. 양씨도 2001년 목공에 입문한 뒤로 주문품 제작과 원목판 수집과 가공에 공들이는 틈틈이 창작 가구들을 조금씩 짜왔고, 그런 작품 30여점이 쌓여 전시를 열 수 있었다.

양씨는 영감이 잘 배어나온 추천작으로 먹감나무 삼층장을 꼽는다. 수묵화 같은 먹감나무 판의 무늬가 일품이다. 윗단의 문양판은 구름을, 중간단은 산의 암봉 같으며, 아랫단은 공방이 자리한 강화도 바닷가 풍경을 닮았다고 했다. “원목 더미 속에서 눈을 탁 때리는 먹감나무 결을 발견하고 희열에 들떠서 부리나케 손질한 것”이라고 했다. 2013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작인 느티용목삼층장도 400여년 수명을 다한 경남 의령의 느티나무 판재들 속에서 문판 문양에 걸맞는 나비 모양의 결을 찾아내고서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전통 부엌가구를 응용한 모던 찬탁도 눈대목이다. 사방이 뻥 뚫린 3층 찬탁 가운데 2층 부분을 먹감나무 풍경 무늬목으로 채우고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찬탁대의 층별 격자를 비대칭으로 만들어 조형감이 독특하다. 2015년 프랑스 생테티엔 디자인 비엔날레 출품작으로 소동호 디자이너와 협업한 이 작품은 현지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신탁근 온양민속박물관장은 “전통 찬탁의 빈 2층 부분을 채워 볼륨감을 준 건 획기적 시도”라고 평했다.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양씨는 80년대말~90년대 중반 노동자대학을 꾸렸던 현장운동가였다. 그뒤 동구권 몰락의 여파로 노동자대학이 해체되자 대우자동차에 취직해 일하다가 지난 2000년 불황 한파로 희망퇴직을 했다. 그때 서광처럼 나무가 다가왔다. “찻집 탁자 앞에 앉았는데, 한결같이 삶과 함께하며 편안함을 주는 나무의 덕성이 눈을 사로잡더군요. 어릴 적부터 나무로 이것저것 만들었던 추억도 있었고.”

전통한옥 장인들에 끼어 문짝을 만드는 일부터 하다가, 중요무형문화재 소목장 박명배 선생 문하에 들어갔다. 나무를 베고 말리고 다듬는 과정을 지켜보고 실연하면서 가구 만들기란 짜임이 전부가 아니라 쓰임과 공간도 재어보며 만들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전시는 그렇게 16년 거쳐 쌓인 배움과 고민, 깨달음의 흔적들을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양씨가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목공은 고통스럽다는 게 매력이에요. 원목을 구하고 가공하는 시간까지 7~8년은 족히 걸려요. 널린 나무가 일용할 가구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작품들은 최고의 미덕을 빛내지요. 항상 따뜻한 느낌으로 사람과 더불어 머무릅니다. 제 작품들이 어느 집에서 이불과 옷, 물건들이 드나드는 진정한 가재도구가 되면 제일 기쁘죠. 좋은 게 거저 생기나요?”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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