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위아래사람들 - 설치 미술? 설치는 미술!…무용에 재미 부른 ‘간섭자’
최정화(44·사진·가슴시각개발연구소장)씨의 본업은 설치 미술가다. 스스로 “설치는 미술”이라고 부른다. 무대미술은 그의 수많은 ‘간섭 대상’ 중 하나다. 한 때 명함에 ‘최정화/간섭자’라고 써놓았을 정도였다. 지금은 점잖게 ‘기획’이라고 바꿔 부른다. 21일 오후, 그를 만나러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에 갔다. ‘낙원삘딍’ ‘정초 1967.10’. “과거로 빨려들어가듯”(최정화) 터널 같은 입구를 지나, 덜컹거리는 현대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에 내리자 퀴퀴한 냄새가 엄습해 왔다. 그의 사무실은 듣던 대로였다. 천장을 뜯어내, 고통스럽게 엉켜 있는 자갈이 나체를 그대로 드러낸 채였다. 1970년대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인형이며 로봇 장난감, 원색의 모형 꽃 전등, 모형 과일 나무 등등. “‘일상 자체가 예술이다’가 제 모토예요. 일상을 ‘숟가락으로 떠서’ 무대나 전시장에 옮겨놨을 때의 느낌, 그걸 노리는 거죠. 앞에서 무용수가 춤을 추고 있는데, 뒤로는 경찰관이 지나가게 하고, ‘댄싱머신’을 무대에 등장시켜 춤추게 했죠. 저는 무대가 극화되는 걸 싫어해요.” 그가 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90년대 초, 현대무용가 안은미씨를 만나면서부터였다. “굉장히 열정적이고 씩씩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 “같이 놀면서 일하게” 됐다. 그의 ‘간섭’은 무용이라는 장르에 ‘재미있는’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딱딱한’ 무용만이 존재하던 시절, ‘재미있는’ 무용들이 하나 둘 생겨난 것이다. 안은미, 전인정, 박나훈 등 톡톡 튀는 감성을 자랑하는 현대무용가들의 작업은 모두 그와 함께 한 것이었다. 아이디어는 역시 일상에서 나왔다. “건널목을 건너는 할아버지가 너무 천천히 걸어가는데 그게 무용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런 일상들을 시공간으로 잘라 빠르게 짜깁기하는 거죠. 현대무용, 재즈, 힙합, 브레이크댄스가 숨가쁘게 넘어가는 거예요.” 미술을 하게 된 사연도 재미있다. “고3 때 수학 시험을 보는데, 답안지에 답 대신 시험 감독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그려 냈어요. 저는 맞을 줄 알았죠. 왜 그땐, 한 번 맞으면 교무실까지 계속 맞으면서 끌려 갔잖아요.” 그런데 미술 선생이 최씨를 부르더니, 미대에 갈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그런 인연으로 홍익대 서양화과에 진학했다. 그런데 평면적인 회화로는 그가 느끼는 세상을, 길거리에서 느끼는 건강함을 표현할 수 없었다. 86년과 87년, 두 차례에 걸쳐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탔지만, 졸업하자마자 그림을 때려치웠다. 그리고 선택한 직장이 인테리어 회사. ‘설치는 미술’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미술을 오래 안했기 때문에 미술을 갖고 놀 수 있게 됐을 거예요. 아마 몇 십년 했다면 ‘눌려서’ 못했겠죠. 저더러 키치라고 하는데 저는 동의 안 합니다. 종로, 동대문에 한 번 나가보세요. 제 작품들은 그곳에서 ‘생활’입니다. 분명히 원본이 있어요. 오히려 청담동, 압구정동이 ‘키치’죠.” 그는 최근 젊은 무용가 박나훈에게 성장 호르몬을 투입 중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춤을 꾸미고 있다. “무용의 매력은 ‘몸’이죠. 몸의 팔딱거림, 두근거림이 좋아요. 연습하는 거 옆에서 보고 있으면 나도 호흡이 가빠지고 기분이 좋아져요. 이제 무용도 많이 다양해졌잖아요. 또 다른 모습의 무용을 보고 싶어요.”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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