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조 작가의 2017년작 <산동>(山動). 적점토판을 맞붙인 작품 표면에 화장토를 귀얄 기법으로 칠해 회화적인 맛을 살렸다.
쪼개지고, 갈라지고, 짓물러지고, 기울어졌다.
그네들이 빚은 분청사기들 몰골이 대체로 이렇다. 내키는 대로 만든 것이다. 흙 고르기나 물레로 모양을 내는 데 굳이 양식과 전범을 따지지 않은 지 오래. 구워진 흙판들이 기울어진 채 움직이는 산이 되고, 투박한 기왓집이 되고, 미니멀 벽화가 되고, 장을 담는 장군병이 된다. 거친 흙으로 빚어 백토를 허옇게 씌운 뒤 알아서 모양 만들고 문양 넣는 분청사기의 세계는 오직 자유인의 경지를 좇는다. 그러나 그 자유는 힘겹다. 스스로 작품의 모양새와 쓰임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거쳐야 한다.
경북 안강에서 작업하는 현대 분청사기의 거장 급월당 윤광조(72)와 그의 제자이자 후배 변승훈, 김상기, 김문호, 이형석 장인이 가나문화재단 기획으로 처음 마련한 신구작 잔치 ‘이제 모두 얼음이네'전은 5인5색의 개성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만큼 길이 다르다. 여느 대가들처럼 후배 유파를 과시하는 마당이 아니다. 윤 장인이 물레를 팽개치고 흙판 붙이기 작업에 선의 숨결을 불어넣는다면, 네 제자들은 각기 재료나 도자기 틀을 내는 과정에서 그들만의 해석과 기법적 내공을 담은 작품들을 보여준다. 변승훈 작가는 서구적 조형성과 맞닿은 분청벽화의 세계를, 김상기 작가는 질박한 손가락 그림으로 문양의 분방함을 더욱 살려냈고, 김문호 작가는 거친 흙으로 남도의 정감 넘치는 탑과 집, 동물들을 빚어냈으며, 이형석 작가는 물레질 과정에서 강한 손질을 가해 갈라지고 터진 특유의 표면 질감을 만들어냈다. 윤광조 장인은 자신의 작업실, 가마에서 용케 버티다 자기 길을 찾아간 제자들과의 전시를 이렇게 말한다. “여전히 어리고 귀엽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나이들이 60을 다 넘었더라구. 작품도 나보다 더 좋고. 당장 전시를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김상기 작가의 2013년작 ‘분청지두문장군병’. 전통적인 형상의 장군병 표면에 손가락으로 자유롭게 휘휘 자연의 무늬를 그려넣었다.
그래서 전시 제목은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더 차다’는 뜻의 ‘빙수위지 이한어수’(氷水爲之 而寒於水)라는 한자성어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 제자들이 더 낫다는 급월당의 겸허한 속내가 들어간 셈이다. 31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02)736-1020.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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