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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200만원에 팔릴 뻔한 왕실보물, 152년만에 무사귀환

등록 2018-01-31 21:57수정 2018-01-31 22:04

병인양요 때 소실된 줄 알았던
효명세자빈 책봉 기념 죽책
지난해 프랑스 경매서 발견
‘또 분실될라’ 유물박스 손과 묶고
비행기 좌석에 실어 국내 환수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효명세자빈의 1819년 책봉 기념 죽책.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최근 프랑스 경매에 출품된 사실을 확인하고 소장자한테서 직접 구입해 국내로 들여왔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효명세자빈의 1819년 책봉 기념 죽책.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최근 프랑스 경매에 출품된 사실을 확인하고 소장자한테서 직접 구입해 국내로 들여왔다.
“대어를 낚았어요!”

지난해 6월 중순 국외 유출 문화재 환수를 전담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사무실에서 탄성이 터졌다. 조사활용팀의 김동현 차장이 프랑스 경매사 ‘타장’의 사이트를 검색하다 1500유로(약 200만원)도 안 되는 헐값에 나온 조선왕실의 대나무쪽 문서들을 발견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외규장각의궤> 등의 기록과 대조해보니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 외규장각(왕실 도서실)에서 약탈해 간 것으로 추정되는 19세기 초 효명세자빈의 책봉 기념 죽책이었다.

이 죽책은 1819년(순조 19년)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이 효명세자와 혼인해 ‘효명세자빈’으로 책봉됐을 때 우의정 남공철이 짓고 중신 이만수가 쓴 문장을 새긴 대나무 문서다. 6쪽(각쪽 높이 25㎝, 각쪽 너비 17.5㎝)을 한폭 묶음 삼아 모두 6폭을 이어 만든 것으로, 왕족을 책봉할 때 내력 등을 새긴 의례 상징물이었다. 외규장각 전문가인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 몇몇 전문가에게 유물 사진을 주고 자문해보니 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수년 전 프랑스에서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왕실 행사 기록집)에 포함되지 않은 유물로, 1857년까지만 외규장각 물품 장부(<형지안>)에 소장 사실이 기록돼, 병인양요 때 불타 사라진 걸로 파악해왔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무조건 갖고 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재단 쪽과 문화재청은 경매사에 경매 중지를 요청하고 급히 전문가·실무진을 파견해 소장자와 협상을 벌인 끝에 지난 7월 19만유로(약 2억5천만원)에 사들이기로 합의했다. 소장자 쪽은 보석상이던 할아버지가 고미술 시장에서 구한 것을 상속받았다는 설명을 내놓았다고 한다. 온라인게임사 라이엇게임즈가 매입비 전액을 기부하는 등 외부 기업도 환수 작전에 가세했다.

문제는 까다로운 반출 절차. 개인 소유물이므로 현지 상법 규정을 따라야 했고, 반출 여부를 현지 전문가와 박물관 등에 꼼꼼히 자문하는 게 관행인 프랑스 당국의 허가를 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8월은 프랑스의 휴가철로 모든 공공기관이 업무를 쉬는데다 프랑스가 소속된 유럽연합에서도 이중으로 반출 허가를 받아야 해 환수 일정은 더욱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재단 실무진은 결국 해를 넘겨 지난 20일에야 현지 경매사에 보관 중이던 죽책을 넘겨받고 유물을 고국행 비행기에 실었다. 수송 임무를 맡은 김상엽 팀장과 김동현 차장은 유물 상자를 비행기 안의 별도 좌석에 올려놓고 혹시라도 분실될까 하는 우려에 자신들의 손에 끈으로 묶은 채 귀국했다고 한다.

이런 곡절을 거친 효명세자빈 죽책이 31일 오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됐다. 재단 쪽은 “지금도 행방을 모르는 의궤 이외의 외규장각 약탈품들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며 “죽책은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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