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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박제된 북한 잠수함, 그 안에 펼쳐진 ‘꽃상여’

등록 2018-03-13 17:13수정 2018-03-13 20:42

김학량·정재호 2인전 ‘자화상’
죽음·퇴장의 잔상들 담아내
김학량 작가가 2017년 찍은 <꽃상여> 연작 중 일부. 강원도 강릉 해변에 좌초한 채 인양된 북한 잠수함 내부의 기계실 밸브가 카메라에 잡혔다. 도판 산수문화 제공
김학량 작가가 2017년 찍은 <꽃상여> 연작 중 일부. 강원도 강릉 해변에 좌초한 채 인양된 북한 잠수함 내부의 기계실 밸브가 카메라에 잡혔다. 도판 산수문화 제공
잠수함은 남았지만, 그들은 사라졌다.

사진의 텅 빈 잠수함 속 기계장치들은 ‘냉엄한 부재’를 증거한다. 울긋불긋 색칠된 밸브 꼭지들이 우뚝하게 눈에 닥쳐온다. 꼭지가 꽃살 모양이라 빨간 꽃, 노란 꽃들이 배수관 사이를 떠다니는 환각이 생겨난다. 상여에 달린 꽃장식처럼.

밸브와 주위 계기판들을 조작했던 사람들은 이제 세상에 없다. 22년 전 한가위를 앞두고 강원도 강릉 앞바다에 침투했다가, 좌초해 뭍으로 달아났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특수부대원 25명. 생포된 1명을 빼놓고 대한민국 군경과 백두대간에서 총격전을 벌이다 모두 이승을 등졌다.

서울 신대방역 근처 주택가에 자리한 전시공간 산수문화를 가면, 김학량 작가의 몽환적인 북한 잠수함 사진과 목탄 잿물 안료로 그린 잠수함 기계장치 정물화를 보게 된다. 미대 후배 정재호 작가와 벌이는 2인전 ‘자화상’의 일부다.

김 작가가 고향인 강릉 정동진 통일안보공원에서 찍은 잠수함 내부 풍경사진들은 놀랍도록 아름답다. 마치 둥실거리는 꽃무더기인 양 찍힌 기계실의 알록달록한 밸브 장치들을 작가는 ‘꽃상여’라고 명명한다. 숨진 이들의 내력까지 더듬게 되면 그 기계장치들의 때깔과 놓임새는 더욱 허망하고도 비장한 분위기로 심상을 파고들게 된다. “그 기계-몸 안에 들어갈 때마다 기능이나 의미를 따질 겨를도 없이 형태와 구조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나머지 감각이 온통 마비되는 듯했다”고 그는 고백했다. 1996년 무장간첩 침투 사건 당시 뭍으로 끌어 올려져 내부 장비를 새롭게 도색한 뒤 박제된 상태로 공개된 함 내 곳곳의 디지털 사진들은 합리성과 비장미를 내뿜는 기계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흑연, 목탄의 가루와 먼지 등을 개어 만든 안료를 수채물감과 함께 붓질하며 잠수함의 전체 선체 모양과 심도계, 압력계 등의 계기판 장치 등을 그린 정물 그림도 인상적인데, 모호함과 스산한 분위기로 가득한 화면 색감 속에서 작가가 체험한 황홀한 미감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남북 분단, 대치의 상징물 속에서 건져 올린 중견작가의 녹슬지 않은 시선과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정재호 작가의 신작 <검은 집>. 한지 위에 목탄 가루와 먼지를 개어 그렸다. 도판 산수문화 제공
정재호 작가의 신작 <검은 집>. 한지 위에 목탄 가루와 먼지를 개어 그렸다. 도판 산수문화 제공
낡은 아파트 풍경 연작들로 알려진 정재호 작가는 14년째 작업 중인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근처에서 발견한 죽음과 퇴장의 흔적들을 화폭에 담았다. 연통에서 질식한 참새의 사체, 콘크리트 바닥에 임시건물로 지어 올린 검은 집, 오랫동안 방치된 폐공단의 굴뚝 등을 그려 넣었다. 김 작가처럼 재와 먼지, 목탄 가루를 갠 안료를 작업 재료로 공유하면서 ‘죽음’과 ‘사라진 것들’을 전혀 다른 일상의 각도에서 찾아내어 함께 배치한 점이 흥미를 유발한다. 소소한 규모에 비해 두 작가의 그림들이 던지는 의미와 형식의 울림은 적지 않다. 정 작가가 말하듯, “그림은 어쨌든 과거의 살아있음에 대한 헌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20일까지. (02)6366-00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산수문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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