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수집 음반 전시회 연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씨
‘고물상에서 건져올린 문화.’ 오는 4월2일까지 서울 잠실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열리는 ‘100 앨범 100 아티스트―대중음악편’ 전시장을 찾았을 때 든 생각이다. 120평 남짓한 전시실에는 대중음악 평론가 최규성(57)씨가 선정한 우리나라 엘피(LP) 음반 132장이 ‘퍼스트 레코드’, ‘데뷔 앨범’, ‘밀리언셀러’ 등 10개의 주제별로 선보이고 있다. 국내 최초 엘피 음반인 (1958)에서부터 일본에서 발매된 걸그룹 ‘소녀시대’의 <픽처 엘피>(2015)까지 58년의 음반 역사를 오롯이 담은 전시 앨범들은 그가 소장하고 있는 2만여개의 엘피 음반 중에서 가려뽑은 것이다.
구슬·딱지·우표 모으던 수집광 소년
초등생때부터 7080 음반도 차곡차곡
이탈리아 벼룩시장서 ‘양희은판’ 발굴도
“팝음악 우대한 문화사대주의 반성” ‘100 앨범 100 아티스트-대중음악편’
새달 2일까지 희귀작품 132장 공개 최씨는 “우리나라 전체 발매 엘피 음반의 60~70%가량을 소장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어떻게 혼자서 이처럼 많은 엘피 음반을 모을 수 있었을까?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음반을 모았다. 어릴 때부터 우표·구슬·딱지 등 뭔가를 꾸준히 모아온 수집광 소년이었으니 특별히 음악을 좋아해서 판을 모은 것은 아니었단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그는 우리 대중음악 엘피 음반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된다. “대중가요가 우리들을 위로해주고 기쁨을 주었지만, 우리는 가요와 가수들을 오랫동안 미국의 팝음악 등에 비해 열등하다고 딱지를 붙여왔습니다.” 오래도록 앓아온 ‘문화 사대주의’ 풍조 탓이다. “우리 대중음악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 엘피 모으기에 점점 빠지게 된 것이다. 그의 엘피 수집 작업은 ‘고물상을 헤매는 일’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2003년 은평구의 고물상에서 발견해낸 우리나라 최초의 포크앨범인 <아리랑 브라더스>(1958년)가 대표적이다. 앞서 2000년에는 이탈리아의 한 벼룩시장에서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발견해 1달러에 사오기도 했다. 고서점과 레코드가게를 발품 팔며 돌아다녀 찾아낸 음반들, 이사하면서 버려진 쓰레기더미 속에서 발견한 엘피들도 모두 사실상 ‘고물상에서 건진 것’이다. 대부분 우리가 ‘딴따라의 노래’로 폄하하며 ‘마음속 고물상’에 던져버린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변화가 일어난 것은 88서울올림픽 때부터였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크게 호응을 얻는 등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 뒤 우리 사회에서 대중가요를 ‘문화’로 대하는 시각이 늘어갔다. 그러면서 그가 모아온 낡은 음반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가 모아놓은 2만여장의 엘피가 없었다면, 우리 대중음악을 되찾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거나, 어쩌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엘피들은 ‘고물’에서 ‘보물’로 변해갔다. 1986년부터 한 일간신문의 사진기자로 활동한 그에게 “왜 그런 것을 모으느냐”고 했던 친구와 동료들도 점차 “부럽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2006년 신문사를 떠나 본격적인 대중음악평론가의 길에 나섰다. 한국대중가요연구소를 만들고, 네이버와 함께 대중가요 앨범 1만1천장을 수록한 우리나라 최대의 <대중가요 사전>을 만드는 등 ‘보물’의 활용도를 높여나갔다. 그러면서 그는 또다시 사람들에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나섰다. 인디음악과 인디뮤지션들이 대표적이다. 그는 무려 41명의 인디음악인을 인터뷰해 2015년 <골든인디컬렉션> 단행본을 펴냈다. 인디음악도 7080 가요 엘피 음반처럼, 내용이 훌륭한데도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인디음악 20돌에 맞춰 나온 <골든…>은 그런 의미에서 인디음악인들에게 큰 선물이었다. 요즘 최씨는 캄보디아나 라오스 등 동남아 대중음악과 중국 조선족 음악에 대한 자료를 모아 연구하고 있다. 역시 이유는 같다. 그 음악들 역시 내면에 담겨 있는 보석을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우리들 시선의 바깥쪽으로 먼저 눈을 돌린 뒤, 우리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을 때 반갑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꽃이 누군가가 그 이름을 불러줄 때 꽃이 되듯, 문화도 누군가가 그 가치를 알고 소중히 간직할 때 꽃으로 피어난다. 최씨는 오늘도 ‘우리 마음속 고물상’에서 새로운 문화의 싹을 찾고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stree21@hani.co.kr
사진기자 출신 대중음악 평론가 최규성씨가 서울 잠실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100 앨범 100 아티스트-대중음악편’ 전시장에서 50년 가까이 수집해온 희귀음반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김보근 선임기자
초등생때부터 7080 음반도 차곡차곡
이탈리아 벼룩시장서 ‘양희은판’ 발굴도
“팝음악 우대한 문화사대주의 반성” ‘100 앨범 100 아티스트-대중음악편’
새달 2일까지 희귀작품 132장 공개 최씨는 “우리나라 전체 발매 엘피 음반의 60~70%가량을 소장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어떻게 혼자서 이처럼 많은 엘피 음반을 모을 수 있었을까?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음반을 모았다. 어릴 때부터 우표·구슬·딱지 등 뭔가를 꾸준히 모아온 수집광 소년이었으니 특별히 음악을 좋아해서 판을 모은 것은 아니었단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그는 우리 대중음악 엘피 음반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된다. “대중가요가 우리들을 위로해주고 기쁨을 주었지만, 우리는 가요와 가수들을 오랫동안 미국의 팝음악 등에 비해 열등하다고 딱지를 붙여왔습니다.” 오래도록 앓아온 ‘문화 사대주의’ 풍조 탓이다. “우리 대중음악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 엘피 모으기에 점점 빠지게 된 것이다. 그의 엘피 수집 작업은 ‘고물상을 헤매는 일’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2003년 은평구의 고물상에서 발견해낸 우리나라 최초의 포크앨범인 <아리랑 브라더스>(1958년)가 대표적이다. 앞서 2000년에는 이탈리아의 한 벼룩시장에서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발견해 1달러에 사오기도 했다. 고서점과 레코드가게를 발품 팔며 돌아다녀 찾아낸 음반들, 이사하면서 버려진 쓰레기더미 속에서 발견한 엘피들도 모두 사실상 ‘고물상에서 건진 것’이다. 대부분 우리가 ‘딴따라의 노래’로 폄하하며 ‘마음속 고물상’에 던져버린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변화가 일어난 것은 88서울올림픽 때부터였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크게 호응을 얻는 등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 뒤 우리 사회에서 대중가요를 ‘문화’로 대하는 시각이 늘어갔다. 그러면서 그가 모아온 낡은 음반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가 모아놓은 2만여장의 엘피가 없었다면, 우리 대중음악을 되찾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거나, 어쩌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엘피들은 ‘고물’에서 ‘보물’로 변해갔다. 1986년부터 한 일간신문의 사진기자로 활동한 그에게 “왜 그런 것을 모으느냐”고 했던 친구와 동료들도 점차 “부럽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2006년 신문사를 떠나 본격적인 대중음악평론가의 길에 나섰다. 한국대중가요연구소를 만들고, 네이버와 함께 대중가요 앨범 1만1천장을 수록한 우리나라 최대의 <대중가요 사전>을 만드는 등 ‘보물’의 활용도를 높여나갔다. 그러면서 그는 또다시 사람들에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나섰다. 인디음악과 인디뮤지션들이 대표적이다. 그는 무려 41명의 인디음악인을 인터뷰해 2015년 <골든인디컬렉션> 단행본을 펴냈다. 인디음악도 7080 가요 엘피 음반처럼, 내용이 훌륭한데도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인디음악 20돌에 맞춰 나온 <골든…>은 그런 의미에서 인디음악인들에게 큰 선물이었다. 요즘 최씨는 캄보디아나 라오스 등 동남아 대중음악과 중국 조선족 음악에 대한 자료를 모아 연구하고 있다. 역시 이유는 같다. 그 음악들 역시 내면에 담겨 있는 보석을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우리들 시선의 바깥쪽으로 먼저 눈을 돌린 뒤, 우리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을 때 반갑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꽃이 누군가가 그 이름을 불러줄 때 꽃이 되듯, 문화도 누군가가 그 가치를 알고 소중히 간직할 때 꽃으로 피어난다. 최씨는 오늘도 ‘우리 마음속 고물상’에서 새로운 문화의 싹을 찾고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s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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