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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마네킹에 심은 ‘아름다움의 욕망’

등록 2018-03-21 05:01수정 2018-03-21 07:54

정금형 작가의 신작전 ‘스파 & 뷰티’
몸 가꾸는 뷰티케어 용품 컬렉션한 이색 전시
마네킹에 브러시 털 심어 마사지 퍼포먼스도 펼칠 예정
미용도구 의인화로 몸관리 욕망 드러내
전시장 4층에 나온 정금형 작가의 마네킹 설치물 중 일부다. 미소년 같은 남성 마네킹의 얼굴, 가슴에 여성의 손과 손톱 마사지에 쓰는 미용솔(브러시)의 곧추선 털뭉치들을 붙여 ‘몸브러시’를 만들었다. 작가는 다음달 5~7일 이 마네킹브러시로 자신의 몸을 마사지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전시장 4층에 나온 정금형 작가의 마네킹 설치물 중 일부다. 미소년 같은 남성 마네킹의 얼굴, 가슴에 여성의 손과 손톱 마사지에 쓰는 미용솔(브러시)의 곧추선 털뭉치들을 붙여 ‘몸브러시’를 만들었다. 작가는 다음달 5~7일 이 마네킹브러시로 자신의 몸을 마사지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털들이 눈을 간지럽힌다.

‘브러시’라고 부르는 미용솔에는 ‘마사지해주는 털들’이 붙어 있다. 살랑살랑 살갗을 쓸어내리며 몸에 뭉친 긴장을 풀어주는 다양한 마사지 털들이 진열장 속에서 각기 다른 재질을 드러내며 놓였다.

손과 손끝을 다듬는 빳빳한 올의 핸드 브러시, 몸을 마사지해주는 부드러운 올의 드라이 브러시, 발을 마사지해주는 굵은 올 브러시, 비누 거품을 입혀 몸에 문지르는 샤워볼과 스펀지 조각들. 남성의 수염을 자라게 하는 발모제, 수염을 윤기있게 해주는 파우더, 분장용 수염 등도 뒤따른다. 목욕하면서 브러시들로 몸을 풀며 행복감에 젖은 이들의 보드라운 육체와 사용 방법 등을 담은 홍보 광고 영상이 곁에서 함께 흘러나온다.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 2~4층에서 열리고 있는 정금형(38) 작가의 신작전 ‘스파 & 뷰티’의 2층 전시장 풍경은 고급 미용제품 매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몸과 외모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미용제품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 최근 국내외에서 수집한 목욕 마사지 용품(스파 & 뷰티)들을 박물관 진열장처럼 컬렉션해놓았다.

10여년 전부터 유압진동기, 진공청소기, 섹스숍 도구 등의 사물, 도구류들과 성적인 몸짓으로 교감하며 그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도발적 작업들을 펼쳐온 정 작가다. 그에게 뷰티 컬렉션은 얌전한 진열장에 머물지 않는다. 이 뷰티케어 컬렉션을 바탕으로 작가는 3층 안쪽의 설치 영상과 4층의 마네킹 작업에서 반전하듯 뜻밖의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작가는 전시의 모태가 된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탱크 홀의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미용솔에 털심을 박는 유럽 현지의 수작업 공방과 기계식 공장 내부를 찾아갔다. 두 작업장 모두 설치 영상에 담았다. 드르륵거리며 나무판에 구멍을 뚫고 털심을 박는 기계 장치의 무미건조한 움직임과 박동이 끝없이 반복된다.

구체 관절 마네킹에 목욕할 때 쓰는 샤워볼과 스펀지를 붙인 정금형 작가의 설치 조형물. 마네킹, 인형 등을 매개체로 삼아 몸과 뷰티용품의 관계를 탐색하는 특유의 작업 방식을 보여준다.
구체 관절 마네킹에 목욕할 때 쓰는 샤워볼과 스펀지를 붙인 정금형 작가의 설치 조형물. 마네킹, 인형 등을 매개체로 삼아 몸과 뷰티용품의 관계를 탐색하는 특유의 작업 방식을 보여준다.

4층에서는 대부분 미소년, 미남의 형상을 한 마네킹들의 얼굴과 가슴팍에 2, 3층에 선보인 미용솔의 다양한 털심들을 박아 넣고 샤워볼을 붙였다. 꿈꾸는 듯 잠자는 듯한 표정으로 인공털이 박힌 채 널브러지거나 상반신만 남은 마네킹들은 손, 발, 전신을 마사지하기 위한 털이 심긴 채 신비감을 내뿜는다. 생명 없는 사물이지만, 막 잠든 듯한 느낌과 무감각한 느낌 사이를 감도는 표정, 몸에 잔혹한 느낌으로 박힌 솔·털 등이 온갖 연상 작용을 일으킨다.

정금형 작가의 작업은 기실, 진지한 사물공부다. 왜 미용솔과 몸의 관계에 집중하는지, 감각과 몸을 움직여 전방위적으로 사물과 몸의 관계를 숙지하고 받아들이는 혼신의 학습 과정을 컬렉션과 설치로 보여준다. 층을 달리해 업그레이드되는 털 컬렉션과 영상, 설치 작업들은 앞으로 치르게 될 작가의 몸작업에 이르는 과정들이다. 뷰티용품 제조공정부터 실제 제품의 배치와 사용 과정에서 영감과 상상력을 부려서 만든 설치와 예정된 퍼포먼스까지 총체적이면서도 치밀한 구상을 보여준다.

뷰티케어로 대표되는 미용 용품은 우리 몸을 가꿔주고 젊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기능을 하는 도구와 제품도 우리 몸처럼 관리하게 된다. 이렇게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예술의 재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몸까지 결합된다면? 정 작가는 이런 호기심과 의문들을 컬렉션에서 전위적 설치로 층위를 거듭하며 진전되는 전시 얼개로 풀어놓았다. 다음달 5~7일 작가는 전시장에서 마네킹 브러시들을 움직여 자기 몸을 마사지하게 하는 퍼포먼스도 펼칠 예정이다(아쉽게도 관람 예약은 다 찼다). 5월26일까지. (02)3448-01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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