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발레 <호두까기인형>은 이미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지난 189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옛 키로프극장)에서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와 차이코프스키의 작곡으로 초연된 이 작품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성탄절용 가족 발레로 사랑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12월만 되면 주요 발레단들이 경쟁적으로 <호두…>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러시아 발레 3대 산맥의 작품이 모두 공연돼, 발레 팬들을 행복한 고민에 빠뜨릴 것으로 보인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셜발레단은 각각 볼쇼이와 키로프 버전을, 벨로루시(백러시아) 발레단은 직접 방한해 정통 슬라브족의 <호두…>를 보여준다.
‘살아있는 신화’를 보고싶다면=국립발레단은 유리 그리가로비치(79)를 초청해 안무 지도를 받는다. 유리는 볼쇼이발레단을 33년동안 이끌며 오늘의 볼쇼이를 있게 한 ‘발레의 살아있는 신화’다. 국립발레단은 지난 2000년부터 유리의 안무로 <호두…>를 공연하고 있다. 유리는 지난 1966년 볼쇼이극장에서 이 작품을 초연하면서 마리우스 프티파가 만든 대본을 크게 뜯어고쳤다. 주인공의 이름을 클라라에서 마리로 바꾸고, 등장인물의 직업까지 세세하게 설정했다. 마임은 모두 춤 동작으로 처리했다.
볼쇼이의 주역 무용수도 ‘수입’한다. 지난 10월 초 내한 공연 때 <스파르타쿠스>에서 프리기야로 강한 인상을 심어준 니나 캅초바, 파리 국제발레 콩쿠르(1998년) 금상에 빛나는 드미트리 구다노프 등 두명을 불러 김주원-이원철, 강화혜-장운규, 이시연-김현웅과 돌아가며 주역을 맡게 한다. 이시연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1년 먼저 입학한 ‘영재’ 출신으로, 국립발레단 입단 석달만에 주역을 낚아채 눈길을 끈다. 23~3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협연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02)580-1300.
자녀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면=유니버셜발레단은 1999년부터 키로프 발레단의 바이노넨 버전을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예술감독의 안무로 선보이고 있다. 바이노넨 버전은 1934년 키로프 발레단에 의해 초연됐으며, 꿈속에서 어여쁜 숙녀가 된 주인공 클라라가 왕자와 함께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 사탕 요정이 된다는 설정이 특징이다. 아기자기한 동작, 원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무대·의상이 어우러져 마치 동화책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환상을 선사한다. 파티 장면과 꼬마 병정으로 50여명의 어린이들이 출연한다. 자녀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임혜경-이원국, 황혜민-엄재용, 강예나-황재원 등이 출연한다. 17~25일 세종문화회관. 협연 서울시립교향악단. 티켓링크 1588-7890.
슬라브족의 정통발레를 보고싶다면=벨로루시발레단은 볼쇼이, 키로프와 함께 옛 소련 3대 발레단으로 불렸다. 지난 1933년 민스크에 국립대극장을 준공하면서 발레단이 생겼다. 지금은 20여명의 스타급 무용수와 100여명의 단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최근 20년동안 객석점유율 100%를 자랑한다. 단장 겸 예술총감독인 발렌틴 옐리자리예프(58)는 26살에 벨로루시 국립 모범가무대극장의 무용 연출가가 된 세계 정상급 안무가다. 27~28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16~25일 부산, 순천, 대구 순회공연. 티켓링크 1588-7890.
이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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