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보스 드림즈>의 한 장면. 엘지아트센터 제공
울창한 숲을 그린 아름다운 그림 속으로 한 소녀가 걸어 들어온다. 소녀를 바라보는 부엉이의 눈이 깜빡이면서 숲은 살아 움직인다. 소녀가 손을 휘저으니 새가 날아가고 나뭇잎이 흩날리며 떨어진다. 소녀가 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탄다. 그네를 타던 소녀의 움직임은 점차 서커스 속 애크러배틱으로 변하며 격렬해진다.
회화, 애니메이션, 서커스, 연극이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융합공연 <보스 드림즈>의 한 장면이다. “기괴함의 거장, 무의식의 발견자”(카를 구스타프 융)로 불리는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 덴마크에서 초연(2016)한 <보스 드림즈>가 6~8일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캐나다 서커스단체 ‘세븐 핑거스’와 덴마크 극단 ‘리퍼블리크 시어터’, 프랑스 비디오 아티스트 앙주 포티에가 참여해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공연 <보스 드림즈>의 한 장면. 엘지아트센터 제공
보스는 특이한 색채와 기괴한 그림체로 천국과 지옥, 인간의 욕망과 타락 등을 표현한 작가다. 공상적인 반인반수의 짐승들, 악몽과도 같은 환영들을 대형 패널화에 그려 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15세기에 활동했지만, 살바도르 달리 등 20세기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공연은 임종에 가까운 보스가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보스는 꿈속에서 중세 미술사 교수의 딸을 만난다. 소녀의 아버지는 보스를 열렬히 사랑해 항상 소녀에게 보스의 예술세계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소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보스가 살았던 1516년부터 현재까지 시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하게 된다. 소녀의 여행은 <쾌락의 정원>, <일곱 가지 죄악과 사말>, <건초 수레> 등 보스의 대표작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한다.
보스의 영향을 받은 초현실주의 화가와 음악가도 작품 속에 등장한다. 콧수염의 중년 신사 모습을 한 살바도르 달리가 미술관에서 보스의 그림을 보다가 갑자기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초현실적인 여행을 한다. 또 보스의 그림 <바보들의 배>에서 영감을 받아 동명의 노래를 발표한 미국 싱어송라이터 짐 모리슨도 공연 마지막 부분에 등장해 퍼포먼스를 펼친다. 시간을 뛰어넘어 계속되는 보스의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공연 <보스 드림즈>의 한 장면. 엘지아트센터 제공
<보스 드림즈>는 융합공연의 무한한 확장성을 보여준다. 스크린 속 보스의 그림이 애니메이션으로 변해 움직이고, 애니메이션은 다시 무대 위 배우와 그를 둘러싼 세트와 겹쳐진다. 이를테면 보스의 그림 <건초 수레>가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어 움직이고, 애니메이션 속 마차가 갑자기 부서지면서 바퀴가 떨어져 나가는데 그 바퀴가 무대 위 휠(wheel)을 이용한 애크러배틱으로 연결되는 식이다. 독특한 분장을 한 배우들은 저글링, 핸드 밸런싱, 트래피즈 등 서커스 기술을 활용해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세븐 핑거스’ 연출 사뮈엘 테트로는 “보스가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는 환상적인 세상, 외설적인 괴물과 날아다니는 생명체를 그렸다. 그런 이미지를 현실 세계로 가져올 방법은 서커스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4만~8만원. (02)2005-0114.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