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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대마초 파동 30년 청년문화 ‘해피스모크’ 에 데다

등록 2005-11-30 18:16수정 2006-03-23 17:19


그해 겨울, 거짓말처럼 스타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대마초를 쉽게 피던 시절, ‘언제부터 단속하겠다’는 한마디 경고나 예고도 없이 수사당국은 ‘대마초 단속’을 시작해 50명이 넘는 가수·연주자·작곡가들을 잡아들였고 풀어준 뒤에도 활동금지령을 내렸다. 서양음악의 단순 번안을 넘어선 한국 팝이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직후였다. 만개를 앞두고 있던 그 꽃은 ‘퇴폐’라는 이름으로 뿌리째 잘려나갔다. 대통령 영구 집권을 위한 ‘10월 유신’이 선포됐고 반대자들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붙잡혀가던 때였다.

정확히 30년전, 75년 12월 3일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이장희·신중현·윤형주·김추자….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던 음악인들을 굴비 꿰듯 엮어 넣어 훗날 ‘자유로운 청년 문화를 풍비박산 낸 일격’, ‘대중음악 발전의 맥을 끊은 사건’으로 기록된 1975년 12월 ‘대마초 파동’은 당하는 처지에선 난 데 없는 홍두깨였다. 요즘과는 달리 당시만 해도 ‘해피스모우크’라고 불렸던 대마초는 그들에게 길거리고 다방에서고 나눠 피우는 소일거리 정도였다고 한다.

이 파동으로 구속됐던 박광수(65·‘신중현과 더 맨’의 전 보컬)는 이렇게 말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길바닥에 앉아서도 피웠어. 한번도 단속당한 적 없지. 그게 ‘망국적 연기’일지 누가 알았겠소. ‘소주 한잔 하자’랑 비슷하게 여겼는걸. 죄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었던 거지.”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날아든 히피 청년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신중현(67)은 그 친구들에게 밥·술 사준 보답으로 대마초를 받았다. “한창 사이키델릭 음악이 유행이어서 알아보려고 68년께 6개월 정도 해봤지. 별 재미없어 끊었어. 나중에 후배들이 ‘대마초 가진 거 있어요’라고 물으면 ‘우리 집에 산처럼 있다’ 그랬지.” 그때까지 대마초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건 음악인들만은 아닌 듯하다. 1970년에 제정된 습관성의약품관리법엔 대마초 흡연을 규제하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단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1975년 12월3일치 <동아일보>는 사회면에 큼지막하게 ‘해피스모우크 흡연자 첫 구속’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대마초 단속은 이 파동을 시작으로 1976년 4월 대마관리법이 제정되면서 본격화됐다.

“소주 한 잔” 처럼 대수롭지 않았는데
75년 12월3일 느닷없이 단속 시작
이장희 신중현 윤형주…줄줄이 구속

정신병원으로 구치소로
박정권 끝날때까지 꼼짝 못했다


방망이질은 살벌했다. 75년 12월3일 ‘그건 너’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이장희를 비롯해 윤형주·이종용이 습관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다음 날 저녁 신중현은 반포아파트 자신의 집에 죽치고 있던 수사관들과 맞닥뜨렸다. 하루 뒤 그는 서울 중구 남장동 여성문화회관 지하로 끌려갔다. “누구랑 같이 피웠냐고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어. 예전에 히피애들, 조지, 마이클, 닉…. 그랬더니 미국 사람은 안 된대. 매달아서 물에 넣는 거야. 죽겠다 싶어서 불러주는 대로 ‘맞다 맞다’ 그랬지.” 이날 저녁 7시께 박광수도 여성문화회관 지하행을 탔다. “뉴스에서 대마초 이야기가 계속 나와. 서울 명동에 있던 로얄나이트클럽에 일하러 들어섰는데 장정 3명이 엘리베이터 안에 밀어 넣고 뒤지는 거야.” 그도 고문을 당했고 그 이야기는 6일치 <동아일보>에 “‘해피스모우크 흡연 자백하라’ 마약단속원이 폭행”이란 제목으로 보도됐다.

신문들은 연일 숨 가쁘게 대마초 관련 소식을 전했다. ‘김추자·권용남·손학래 구속, 가수 박인수 수배’(6일치), ‘30여명 연예인 명단 입수… 정미하(배우) 구속, 남성듀엣 어니언스의 임창제 자수’(8일치), ‘가수 장현 자수’(9일치) ‘코메디언 이상해·이상한, 가수 정훈희·이수미 자수’(10일치), ‘가수 김세환 김정호 불구속 입건’(22일치). 76년 1월30일치 <조선일보>는 “75년 11월 26일부터 76년 1월20일 사이 대마초 관련 연예인은 모두 54명으로 구속 20명, 불구속 11명, 수용중 13명, 훈방 10명”라며 “그 가운데 가수는 23명, 배우 3명, 코디미언 2명, 악사 26명”이라고 보도했다. 그물망에 잡힌 건 연예인 뿐만이 아니었다. 23일 서울지검은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밀매조직 12개파 가운데 5개파 35명과 흡연자 101명 등 모두 136명을 적발해 이중 65명을 구속, 22명은 불구속, 13명은 정신병원 등에 수용, 나머지 32명은 훈방조처했다”고 밝혔다.

수사 휘몰이는 잦아든 듯했지만 잡혀 들어간 사람들의 고초는 여전히 호됐다. 서대문정신병원에서 신중현이 보낸 1주일은 이렇다. “처음엔 독방에 있다가 나중엔 정신질환자들과 같이 놀았어. 사방이 창살이고. ‘이렇게 미치게 하려는구나’ 생각했지.” “고문받은 뒤 정신병원에서 한달동안 갇혀있었다”는 기타리스트 강근식(59)은 이렇게 기억한다. “감독, 가수, 디스크자키…. 30여명 같이 있었어. 밖으로 연락도 안됐지. 불안했지만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래도 재밌던걸.”

벌금 내고 풀려난 강근식과 달리 구속기소된 사람들은 서대문구치소로 옮겨졌다. 신중현은 “넉달 동안 도둑들하고 같이 있었다”고 했다. “하루 종일 도둑질한 이야기만 들었어. 레파토리 끝나면 다시 처음부터 똑같이 낱말하나 안 바꾸고 말해. 어찌나 지겨운지….”

12월23일 이장희·김추자 등은 벌금형을, 그 다음해 3월께 신중현·박광수·윤형주 등은 징역1년~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다. 벌의 경중을 떠나 박정희 정권이 끝날 때까지 이후 4년 동안 그들은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자수해서 벌금만 냈던 ‘어니언스’의 임창제(59)는 이렇게 말했다. “방송이고 공연이고 다 금지야. 나이트클럽에서도 안 받아줘. 받아줘도 출연료가 그전에 반 토막이야. 먹고 살기 힘들어서 정신 없었지.” 박광수는 “그 뒤로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 그만두고 고향에서 살려고 했는데 거기서도 폐인 취급이던걸. 대마초꾼으로 찍힌 거지.”

‘대마초 파동’의 큰 푸닥거리는 지나갔다. 그 잔물결은 멈추지 않았다. 76년엔 김도향이, 77년엔 하남석·이동원·채은옥·조용필 등이 대마초 탓에 곤욕을 치렀다. 금지곡이 너무 많아 방송사 피디들마저 “틀 곡이 없다 갈팡질팡”(<일간스포츠> 75년 12월26일치)하던 사이 빈 자리는 흘러간 옛 노래들이 메웠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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