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초 김중업이 작업했던 프랑스 파리의 르코르뷔지에 아틀리에의 일부분을 재현한 1전시장. 안쪽 벽면에 르코르뷔지에의 영상이 비치고 그 앞에 작업등이 딸린 설계 탁자들이 연이어 보인다.
‘밤은 어둠을 암닭처럼 품고 말이 없다.’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53년 7월3일 밤. 20대 건축가 김중업은 작업한 설계도면 한구석에 이런 글귀를 한글로 끄적거려 놓았다. 프랑스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에 있는 스승 르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작업실)에서 홀로 도면을 그리던 중이었다.
도면은 르코르뷔지에가 관심을 쏟고 있던 인도 서부 찬디가르의 행정청사를 짓기 위한 5번 블록의 설계안. 정연한 선으로 구획된 방들과 계단을 표시한 평면도가 그려졌다. 건조한 인상이지만, 한쪽에 낙서하듯 그려진 분방한 글씨가 보는 이에게 묘한 교감을 일으킨다. 청년 김중업은 65년 전 이국의 작업실에서 깊은 밤 외로움에 사무쳤던 것일까. 스승인 거장 르코르뷔지에와 프랑스는 과연 그에게 어떤 존재였고, 무엇을 남긴 것일까.
전시에 처음 공개된 파리 스튜디오 시절 김중업 건축가의 설계도면. 50년대 르코르뷔지에가 주력했던 인도 찬디가르 행정청사의 단면도다.
한국 건축의 거장 김중업(1922~1988)이 이역의 도면에 남긴 글씨를 경기도 안양예술공원 들머리에 있는 김중업건축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만나게 된다. 작고 30주기를 맞아 지난달 31일부터 시작된 특별전 ‘김중업, 르코르뷔지에를 만나다: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이 그 자리다.
김중업은 르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였다. 195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국제예술인대회에 명예위원으로 찾아온 거장을 만난 뒤 그의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싶다고 간청해 52~55년 파리의 아틀리에에서 일하며 모더니즘 건축의 실무와 조형 감각을 익힌다. 1956년 귀국한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건축의 주역이 된다. 60년대의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부산 유엔묘지공원, 80년대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등 국내 건축사에 기념비가 된 수작들을 내놓는다. 전시장인 김중업건축박물관 또한 그가 르코르뷔지에의 강한 영향 아래 만든 초기작. 뼈대 구조를 노출하고 벽면 콘크리트 분할선의 이미지를 강조한 이 건물은 과거 제약회사 공장으로 쓰였다가 2014년 리모델링됐다. 바로 옆에 신라·고려 고찰인 안양사터의 금당 주춧돌이 나란히 드러나 역사를 갈마드는 정취도 맛보게 된다.
1953년 7월 파리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던 김중업이 ‘밤은 어둠을 암닭처럼 품고 말이 없다’는 단상을 적어놓은 설계도면. 찬디가르 행정청사 5번 블록 도면에 적어놓은 글귀로 파리 시절 그의 솔직한 내면을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전시에서 가장 볼만한 대목은 1섹션의 파리 아틀리에를 재현한 부분이다. 세브르가에 있던 르코르뷔지에의 사무실과 김중업이 일했던 아틀리에 공간 일부를 살렸다. 김중업이 참여한 12개 프로젝트, 그가 그린 320여장의 도면을 탁자 위에서 한 장씩 넘기며 볼 수 있다. 수도원을 개조해 아치형 출구를 한쪽 면에 잇따라 낸 채 작업 탁자를 줄지어 놓은 과거 아틀리에의 일부 모습이 나타나고, 행정청사와 주택 등에 대해 그가 그린 설계도면의 복제본을 탁자에 펼쳐 김중업과 도면으로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살아난다. 2섹션 ‘아마다바드, 세 개의 건축’과 3섹션 ‘새로운 도시, 찬디가르’는 김중업의 파리 시절 가장 중요한 작업 체험을 안겨준 인도 서부 도시 아마다바드의 공공건물과 저택, 인도 북부 펀자브주의 찬디가르 행정수도 사업의 참여 도면들을 보여준다. 붙박이 가구의 세부도에서 시작해 점차 설계능력을 익히면서 폭넓은 시각적 통찰력이 필요한 거대 청사의 단면도, 평면도, 심지어 르코르뷔지에의 벽화 그림까지 모사하면서 작업 반경을 넓혀간 작가의 건축 편력을 넘겨다보게 된다. 찬디가르 청사 설계의 경험은 이후 4섹션에서 선보이는 부산대 본관, 주한 프랑스대사관 등의 작업에 새롭게 번안되어 나타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파리 아틀리에에서 르코르뷔지에와 작업실의 후학들이 모여 찍은 사진, 앞줄 오른쪽 안경 쓴 인물이 르코르뷔지에다. 뒷줄 왼쪽 넷째 인물이 김중업이며, 앞줄 오른쪽 넷째 인물이 올해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인도 건축가 발크리슈나 도시다. 도시는 파리 시절 김중업을 작업 동료로 기억했다.
곁가지로 훑어볼 요소도 많다. 1층에서 2층 3섹션으로 올라가는 통로 사이에 보이는 절터 주춧돌의 윤곽들은 김중업 건축에 전생의 연처럼 얽혀든 안양 사찰 건축의 역사를 오버랩시켜 준다. 섹션 사이 가벽에 간간이 붙은 김중업의 스케치, 일기, 르코르뷔지에와 연락한 편지와 건넨 명함 등은 초창기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사실 르코르뷔지에는 애착을 갖고 김중업을 대하지는 않은 듯하고, 구조조정으로 그를 내보낸 정황도 보인다. 1955년 10월 사무실 규모를 축소하면서 김중업에게 다른 자리를 알아보라고 요청한 편지가 그렇다. 두 거장과 박물관 절터 사이에 얽힌 갖가지 인연들이 색다른 건축사의 스토리텔링을 빚어내는 전시마당이다. 6월17일까지. (031)687-0909. 안양/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김중업건축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