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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앵포르멜 유행 멀리했던 ‘개성파’를 조명하다

등록 2018-04-24 05:02수정 2018-04-24 20:56

문우식 회고전 ‘그리움의 기억’

1950~60년대 화단 유행과 거리 두고
원색조·면분할 개성적 화풍 일궈
수십년 잊혀 있던 40여점 끄집어내
문우식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성당 가는 길>.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전 출품작이다. 현실 풍경과 다른 원색의 색조와 격자처럼 평면화한 건물들의 모던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문우식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성당 가는 길>.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전 출품작이다. 현실 풍경과 다른 원색의 색조와 격자처럼 평면화한 건물들의 모던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앙상한 시절을 담은 그림이다.

울긋불긋 원색으로 뒤덮인 1950년대 서울 명동성당과 부근 건물들의 풍경이 당시 피폐했던 분위기를 드러낸다. 원색을 입혔어도, 모던한 감각으로 화면을 갈라놨어도 화폭은 시대의 음울함을 감추지 못한다. 전쟁 직후 도시와 건축물, 사람을 그린 문우식(1932~2010) 작가의 모더니즘 회화들이 던지는 인상이다.

서울 홍익대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우식 회고전 ‘그리움의 기억’은 한국 현대미술사의 시작점인 50년대 화단의 속내를 되살펴보게 한다. 수십년간 잊혀 있던 당대 개성파 작가의 대작과 소품 30여점이, 또다른 특기였던 60년대의 디자인 포스터 작품 12점과 함께 내걸렸다.

<나와 소녀>(1957). 작가 자신과 아내를 소년과 소녀의 도상으로 그렸다.
<나와 소녀>(1957). 작가 자신과 아내를 소년과 소녀의 도상으로 그렸다.
홍대 미대를 나와 이 학교 공예과 교수로 재직했던 문우식은 50~60년대 화단 유행을 좇지 않고 독특한 자의식을 드러낸 작가였다. 도형처럼 분할된 화면에 원색을 지닌 풍경과 인물을 배치하는 특유의 화풍은 야수파와 입체파, 분리파 회화를 융합한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화면 전체를 단순한 색덩어리로 덮어버리거나 번지게 하는 서구 앵포르멜 화풍의 유행을 피해 나갔다. 대신 풍경을 반듯한 격자 얼개 안에 가지런히 정렬시키고 주관적인 색채감을 강조한 평면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명동성당의 풍광을 담은 <성당 가는 길>이나 자신과 아내를 소년과 소녀의 도상으로 상징화한 <나와 소녀>, <탁상 위의 정물>에서 입체감보다 화면 자체의 평면적 이미지를 감각적인 색조와 함께 강조하는 모더니즘 취향을 읽을 수 있다.

문우식 작가는 그래픽디자인에도 특출한 역량을 드러냈다. 1966년 만든 관광포스터 <인천항>. 항구도시 특유의 풍경과 해산물들을 짜임새있게 배치한 디자인 감각이 느껴진다.
문우식 작가는 그래픽디자인에도 특출한 역량을 드러냈다. 1966년 만든 관광포스터 <인천항>. 항구도시 특유의 풍경과 해산물들을 짜임새있게 배치한 디자인 감각이 느껴진다.
작가의 색다른 그림 이력은 서구 미술 사조는 물론, 화단 대가들의 작업들을 폭넓게 섭렵하고 자기화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1948년 남관의 미술연구소를 다니면서 그림에 입문한 그는 52년 부산 피난 시절 홍대 미대를 다니며 김환기, 박고석, 한묵 등을 사사했고, 이중섭과도 부산 피난 시절 교유해 누상동 집에서 함께 작업할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 전시에는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전과 현대작가 초대 미술전, 1962년의 신상회 전에 출품한 이후로 한번도 재전시되지 않았던 50~60년 전 주요 작품들이 대거 나와 특정 사조에 구속받지 않은 채 50년대 구상에서 60년대 색면추상으로 나아갔던 고인의 작품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공방이나 소녀, 말의 몸체 등을 단순화한 구도로 재구성한 그림들과 노란색 하늘 아래 스펙터클하게 펼쳐진 다리 공사 현장을 담은 <무명교를 위한 구도>(1957) 등이 눈에 띈다. 모더니즘에 대한 갈망과 기계문명에 대한 두려움 등이 읽히는 출품작들은 당시 화단에 막 쏟아져 들어온 서구 사조를 채 소화하지 못했던 당대 작가들의 혼란스러운 속내도 엿보게 한다. 김이순 홍대 교수는 “앵포르멜을 수용하지 않아 배제된 한국 현대미술사의 또다른 측면을 복원하는 전시”라고 평한다.

홍대 재학 시절의 <자화상>(1955).
홍대 재학 시절의 <자화상>(1955).
작가는 60년대 그래픽디자인으로도 관심을 돌렸다. 안쪽에 있는 서울, 인천, 부산, 대관령 등지의 관광포스터들이 그 산물들인데, 지역의 특징적 풍경을 콕 집어내면서 감각적인 무늬의 대비, 회화적인 묘사력이 엿보이는 수작들이다. 작고 1년 전 “누가 그림을 훔쳐가는 꿈을 꿨다. 서울로 가져와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따라 지방 창고에 있던 옛 작품들을 발굴해 수복한 세 딸과 아들의 노력이 빛을 보게 된 전시다. 29일까지. (02)320-3272.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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