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전시장에 있는 정현 작가의 신작 <무제>. 옛 한옥을 철거하면서 잔해로 남겨진 나무 자재들을 원형으로 쌓아 올려 재구성했다. 자재에 어린 과거 시간의 흔적과 수직으로 상승하는 조형적 힘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촬영 김민곤
‘조각이란 덧붙이거나 떼어내는 것이다.’
서구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원근법을 체계화한 이론가였던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1404~1472)가 명저 <조각론>에서 언급한 말이다. 흙 같은 부드러운 소재는 덧붙이고 돌같이 딱딱한 소재는 떼어내서 형상을 빚어야 하는 조각의 숙명을 가장 명쾌하게 요약한 명제라고 할 만하다.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 전관에서 신작전을 열고 있는 중견 조각가 정현(62)의 작업은 알베르티의 유명한 명제에 ‘찾아내고 바꾼다’는 개념을 밀착시킨 것들로 볼 수 있다. 대부분 ‘무제’란 제목으로 출품된 신작들은 서울 난지도 부근 옛집이 재개발로 헐리면서 나온 폐나무 부재들이나 부산 기장의 수백년 묵은 향교를 해체수리하면서 나온 대들보 따위를 재해석해 만들었다. 묵은 채 방치됐다가 철거 과정에서 찢기고 조각난 부재들을 수소문해 찾아내는 과정이 선행된다. 이렇게 찾은 소재들을 작가는 직접 다듬어 쌓거나 붙인다.
3층에 나온 정현 작가의 신작 조형물 <무제>. 먹물 입힌 폐나무 자재들을 수평으로 늘어놓으면서 끌린 흔적을 수묵 흔적처럼 남겼다. 2층의 수직 구도 조형물과는 대비되는 구도를 보여준다. 노형석 기자
1층, 옛 향교의 대들보를 재활용한 설치작업과 2층의 원통 모양으로 쌓아 올려진 폐자재 더미 조형물들은 찾아내서 재구성한다는 작업 원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갈라지고 좀먹은 구멍들이 숭숭 뚫린 대들보는 원래 지붕을 이던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몸체 위에 치솟은 나무 부재 3개가 접붙여져 지붕이 아니라 허공을 떠받치는 존재로 바뀌었다. 2층의 원통형 나무 부재 구조물들도 굴착기 삽날에 부서져 날카로운 단면을 드러낸 나무 부재들이 먹물을 뒤집어쓴 채 원형으로 올라가면서 수직성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3층에서는 먹을 뒤집어쓴 나무 부재들이 옆으로 배열된 채 아래 흰 여백에 마치 일필휘지의 붓글씨 같은 수평적 에너지의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버려진 것들에 대한 그의 탐색은 유난스럽다. 작가는 17년 전 금호미술관 초대전에서 철도 선로의 폐침목들을 소재로 사람 군상 작업들을 내놓은 이래로 침목,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 잡석, 폐철근 등 험하고 거칠고 조악한 소재들만 골라 작업해왔다. 재료들의 거친 조형적 에너지와 시간의 흔적들을 뽑아내어 표출하려는 조형적 투쟁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몸의 감각, 기억과 정신을 형상화하려는 실존적 의지에 끌렸다고 작가는 말한다. 프랑스 유학 시절 기법에만 익숙하던 그를 향해 ‘장인에 머물 것이냐’고 질타한 스승의 가르침, 정신을 물화시키는 방도를 찾기 위해 돌과 석고를 두들겨 깨며 방황했던 기억이 이면에 자리잡고 있다. 손맛이 사라지고, 추상화된 개념들만 유행하는 요즘 미술판에서 강력한 물질성과 육감을 담은 작가의 작업들은 노동이 성찰적인 사유와 만나 빚어낸 결과물이란 점에서 여전히 신선하다. 3층에 내걸린 콜타르로 만든 대형 드로잉과 지하층의 도끼로 팬 듯한 90년대 석고 두상, 철제 토르소 등은 이런 작가적 편력이 남긴 흔적들이다. 버려진 철물, 쇠찌꺼기들을 용광로에 넣기 위해 깨뜨려 부수는 파쇄공을 재해석한 근처 학고재 화랑 앞 조형물들은 작가의 전복적 개념을 엿볼 수 있는 또다른 감상거리다. 5월22일까지. (02)720-5114.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금호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