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92살로 세상을 떠난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은 올해 1월 지인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와인파티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주치의로부터 암으로 4개월 정도 살 수 있다는 통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자신이 소중하게 아끼는 물건을 하나씩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그는 한 달 전 평생 모은 자수와 보자기 보물들을 간직한 한국자수박물관을 서울시 공예관에 시집 보내는 일에 흔쾌히 사인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병상에서 박물관 운영 50년을 기념해 지인들과 박물관 관계자들이 보내온 글과 이미지들을 모은 문집 <온 세상을 싸는 보자기>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다.
그는 아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자수와 보자기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탈바꿈시킨 `미다스의 손‘이었다. 쓰다가 낡으면 버리는 하찮은 물건이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고인의 이력을 훑어보면, 한국자수박물관장, 규방문화연구가, 환경작가, 한국박물관 명예회장 등 여럿이지만, 그 어느 것도 자수와 조각보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문화전도사의 업적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그의 삶을 이렇게 비유했다. “허동화 님은 가을 낙엽으로 봄의 꽃동산을 만드는 마술사입니다.”
세계 유수 박물관에서 자수와 보자기 전시를 초청하는 일이 잇달았다. 영국 애쉬몰린미술관, 프랑스 니스 동양박물관, 독일 쾰른 동아시아박물관,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아시아박물관, 일본민예관 등 세계 유명한 박물관에서 자수와 보자기 전시회를 열었다. 이렇게 연 해외전이 무려 11개국 55회에 달한다. 덕분에 보따리로 설치미술을 하는 세계적인 작가 김수자가 나오고, 국제보자기포럼이 정기적으로 열리며, 루이 페랄, 크리스챤 디올, 샤넬, 이세이 미야케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조각보의 패턴을 활용하는 패션을 선보였다. 더욱이 오스트레일리아, 터키 등 외국의 디자인계 판도를 조각보로 바꿀 정도였으니 그 파급효과는 우리 예상을 뛰어넘는다. 작은 박물관에서 이룬 놀라운 기적이다.
복(福)에서 나온 말인 보자기는 생활 속의 요긴한 도구이면서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신기한 물건이다. 이 가운데 남은 천을 아껴서 이어붙인 조각보는 사랑의 예술이다. 남편의 두루마리 조각, 아들의 바지 조각, 딸의 저고리 조각 등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듬뿍 담겨 있다. 몬드리안, 클레, 로스코 등 현대 작가들의 추상미술을 연상케 하는 조각보는 독특한 구성미와 색채의 조화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허동화 관장은 이러한 조각보를 ‘한국의 축복’이라고 말했다. 이 보자기들로 온 세상을 곱게 싸서 우리에게 행복을 전해주고 따뜻한 사랑을 나눠주는 일로 평생을 보냈다. 이제 그는 하늘정원으로 자리를 옮겨 하늘의 꽃을 가꾸는 정원사가 되겠다며 우리 곁을 훌쩍 떠났다.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