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대형 비디오 프로젝션을 통해 위압적인 회색 도시와 회색 기계장치가 등장한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 반복적인 기계 소리, 어둡고 우울한 조명이 어우러진 가운데 책상 앞에 앉아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처리하던 한 남자 앞에 ‘마법’같은 일이 펼쳐진다. 갑자기 나타난 곡예사와 저글러들이 책상 위와 사무실 바닥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의 옷자락이 한 떨기 꽃잎처럼 흩날리자 노랑 파랑 초록의 풍선이 떠다니며 잿빛 도시에 ‘색’을 입힌다.
무용·음악·연극 등 타 장르와의 융합을 강조한 세계적인 컨템포러리 서커스단체 ‘서크 엘루아즈’가 5~8일 서울 강남구 엘지아트센터에서 신작 <서커폴리스>를 선보인다. 2011년 이후 7년 만의 내한이다.
‘서크 엘루아즈’는 ‘태양의 서커스’와 함께 캐나다를 양분하는 서커스단체다. ‘태양의 서커스’가 장대한 스펙터클로 서커스의 대중화·상업화를 이끌었다면, ‘서크 엘루아즈’는 아름다운 미장센과 연극적 요소가 돋보이는 극장형 서커스로 서커스를 예술 장르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993년 창단 이후 25년 동안 11편의 공연을 전 세계 50개국 500여 도시에서 선보여 350만 관객을 끌어모았고, 한국에서도 <레인>(2006), <네비아>(2008), <아이디>(2009) 등을 선보인 바 있다.
이번에 공연하는 <서커폴리스>는 독일 프리츠 랑 감독의 고전 에스에프(SF)영화 <메트로폴리스>(1927)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도시 메트로폴리스에서 벌어지는 자본과 노동계급 간의 갈등과 투쟁을 다룬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회색의 대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반란을 다양한 서커스 기술을 통해 유쾌하게 풀어낸다. 동물쇼와 압도적 무대장치를 강조하는 기존 서커스에 견줘 스토리와 여백의 미, 스타일이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볼거리도 충분하다. 12명의 곡예사는 에어리얼 로프(줄에 매달려 오르내리기), 디아볼로(공중에서 팽이 돌리기), 뱅퀸(사람 위에서 공중회전), 저글링, 휠(훌라후프보다 2배 큰 철제 바퀴 돌리기) 등 서커스의 대표적인 기술을 구사한다. 특히 공연 중반부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 곡예사가 펼치는 5분간의 공중 아크로바틱과 컨토션(연체곡예)은 신체가 빚어내는 아름다움과 중력을 거스르는 놀라운 움직임으로 관객의 환호를 부른다. “태양의 서커스보다 더 힙하고 섹시한 공연”(더 스테이지), “<서커폴리스>보다 큰 쇼는 많지만, 이보다 아름다운 쇼는 없을 것”(뉴욕 타임스) 등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02)2005-0114.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