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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명작부터 이한열 열사 운동화까지 ‘담긴 시간’ 복원하죠”

등록 2018-07-18 18:53수정 2018-07-18 22:29

[짬]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김겸 대표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겸 대표가 아버지 김수익 화가의 작품 앞에 섰다.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겸 대표가 아버지 김수익 화가의 작품 앞에 섰다.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김겸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대표가 최근 펴낸 에세이집 제목이다. 그는 영국 링컨대에서 유물 보존을 배워 석사를 딴 미술품 복원 전문가다. 2005년부터 6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복원 실무를 쌓았다. 그 뒤엔 연구소를 차려 여러 유물을 치유해왔다. 2014년엔 홍익대에서 ‘미술장르별 보존복원 방법 및 사례연구’로 박사도 받았다. 지난 13일 경기 고양시 정발산동에 있는 연구소에서 복원가의 삶을 글로 복원한 김 대표를 만났다.

그는 이한열 열사 운동화를 복원했다. 소설가 김숨은 이 운동화 복원과정을 소설로 기록했다. 고 문익환 목사의 피아노, 박래전 열사의 운동화도 치유했다. 그는 올해로 복원 인생 21년째다.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을 마친 1997년 호암미술관에서 복원 일을 시작했다. 구제금융위기로 1년 만에 미술관에서 해고된 뒤 작심하고 일본으로 복원 유학을 떠났다. 일본과 영국에서 모두 4년간 공부했다.

그의 주전공은 조각품 복원이다. 석고 다루는 기술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마르셀 뒤샹, 이브 클랭, 권진규, 백남준, 이성자 등 숱한 거장들의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쳤다.

미술품 복원가가 열사의 운동화를 복원했다죠? “어떤 물건이 지닌 가치를 제가 평가할 수는 없어요. 최근엔 ‘태권브이’ 장난감도 복원했어요. 아버지 장난감인데 아들이 가지고 놀다 망가뜨렸어요.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죠. 복원 의뢰가 들어오면 어떤 물건이든 다 받아요.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 마음 때문이죠.”

일본·영국 유학 ‘복원 인생’ 21년째
뒤샹·클랭·권진규·백남준 등등
“석고조각 다루는 기술은 세계 최고”
이한열·박래전 열사 운동화도 ‘치유’

에세이집 ‘시간 복원하는 남자’ 펴내
“한국 소장자들 작품 아끼는 마음 아쉬워”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문학동네 펴냄) 표지.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문학동네 펴냄) 표지.
복원 의뢰가 몰린다면? “일이 있으면 주말도 없고 밤도 따로 없어요. 몰릴 때는 몰리지만 없을 땐 한가해요.” 연구소는 김 대표 외에 연구원 1명과 연수생 1명을 두고 있다. “국내에 미술품 복원업체가 4~5곳 있어요. 정직원을 둔 곳은 저희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가 복원을 공부한 일본이나 영국은 10명 이상의 직원을 둔 업체도 있단다. “일본은 주로 도제식이고 영국은 조합 형태죠.” 국내 미술관 중엔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 정도만 복원실을 두고 있단다.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른 미술관들은 외부 전문가와 계약을 맺어 작품 수리를 맡깁니다.” 복원에 관심을 갖는 젊은이들은 많지만 복원 일자리는 희귀한 이유다.

그는 한국의 소장자나 관리자에겐 작품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유화는 아무리 좋은 미술관에 보관해도 30년이 지나면 빛이 바래요. 국내 소장 미술품 대부분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어요. 큰돈을 들여 외제차 범퍼 수리는 하면서 집에 있는 미술품 수리엔 돈을 쓰지 않아요. 미술품에 쏟는 애정이 외제차의 10분의 1도 되지 않죠.”

왜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라고 했나? “저는 지나간 시간의 자취인 물건을 건강하게 남아 있도록 하는 사람이죠. 이게 어떤 의미인지 말하고 싶었어요. 더 행복한 삶을 위한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가 바로 우리가 지나온 시간입니다. 역사죠. 물건에 남겨진 시간을 후손에게 온전히 전하고 싶어요.”

서울 신촌 이한열기념관 상설 전시실에 가면 그가 3년 전 복원한 열사의 운동화를 볼 수 있다. “(기념관 쪽에서 운동화 복원을 문의한) 미술관 다섯 곳에서 저를 적임자로 추천했다고 해요.” 그는 겸임교수로 있는 건국대 회화보존학과에서 기초화학과 유기화학과 같은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폴리에스터 우레탄 성분인 밑창의 반이 바스러진 운동화를 되살리는 전문가로 여럿이 그를 지명한 이유다.

그는 책에서 보존복원은 ‘사람의 일’이라면서 ‘협의하는 보존’이란 개념을 끌어와 소개했다. 작품 자체는 보존복원에 어떠한 권리도 없다고도 했다. “명화 ‘모나리자’도 세상에 단 한 명 남은 사람이 춥다면 태울 수 있죠.” 운동화 복원을 예로 들었다. “이한열 열사 운동화 복원을 처음 논의할 때는 운동화의 (훼손된) 모습을 유지한다는 쪽이었죠. 그때 저는 전체 복원을 하자고 했어요. 부스러진 모습이 이한열 열사 사건과 인과 관계가 없는 데다 온전한 모습에 가깝게 재건하는 게 가능하다고 봐서죠.” 박래전 열사 운동화 복원 때는 신발에 살짝 박힌 포말소화기 분말 보존에 신경을 썼단다. “열사가 분신했을 때 신발에 스며든 분말이니까요.”

복원 작업 중인 김겸 대표.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제공
복원 작업 중인 김겸 대표. 김겸미술품보존연구소 제공
그의 아버지는 화가 김수익이다. 작가와 달리 복원가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 또한 “온전히 작품에 집중하도록 하려면 복원 사실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왜 창작이 아닌 복원인가? “창작하고 싶은 생각은 늘 있었죠. 하지만 못해서 안 하는 것입니다. 복원하면서 좋은 작품을 많이 본 게 제 의식 속에 자리잡은 탓도 커요.” 아버지는 복원가인 아들의 성취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피아노가 있는 미술사’ 강의도 8년째 해오고 있다. 대학 시절엔 클래식 음악 디제이도 했단다. “낭만주의 화가인 들라크루아의 작품 세계를 말하면서 낭만주의 작곡가 쇼팽의 곡을 들려주죠. 강연료는 대기업 같은 곳에선 많이 받지만 작은 공부모임이나 재정이 어려운 곳에는 재능 기부를 합니다.”

복원가의 자질? “자질은 필요없어요. 복원은 매우 넓은 분야입니다. 조금씩이나마 넓게 알아야 합니다. 학위나 자격증보다 꾸준히 복원 작업을 하는 게 중요해요. 같이 일하는 연구원도 법학과 출신입니다.” 그는 일본의 이세신궁은 20년 주기로 해체하고 재조립한다면서 “미술품 보존은 돌보는 행위를 통해 이뤄진다”고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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