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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환청처럼 들린 밥 딜런의 목소리 “이봐, 난 거기 없다고”

등록 2018-07-28 15:43수정 2018-07-28 16:07

밥 딜런 두번째 내한공연 리뷰

말 없이 두 시간 동안 노래만 부르고
원곡 비틀고 꼬는 파격 편곡도 여전
첫 내한공연 때와 바뀐 게 없다지만
실은 늘 변하고 앞서가는 걸지도 몰라
27일 두번째 내한공연을 펼친 밥 딜런. 그는 이번 내한공연에서 사진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소니뮤직 제공
27일 두번째 내한공연을 펼친 밥 딜런. 그는 이번 내한공연에서 사진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소니뮤직 제공
밥 딜런은 밥 딜런이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과 음악세계를 고집하는 태도는 여전했다.

27일 저녁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펼친 두번째 내한공연에서 그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두 시간 동안 노래만 줄창 불렀다. 아니, 불렀다기보다는 툭툭 뱉어냈다. 편곡 또한 원곡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많이 비틀고 꼬았다. 두번째 곡으로 부른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는 양병집과 김광석이 부른 번안곡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국내 관객에게 익숙한 노래인데도 원곡을 바로 떠올리는 이들이 얼마 없었을 정도였다. 8년 전 첫 내한공연 때도 그랬다. 당시 파격적인 무대를 접하고 실망한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밥 딜런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예술’을 했다.

그게 밥 딜런이다. 그가 1965년 미국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통기타 대신 일렉트릭 기타를 치며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을 불렀을 때 관객들은 야유했다. 포크를 배반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밥 딜런은 신경쓰지 않았다. 결국 그는 포크록이라는 새로운 문을 열어젖힌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치며 첫 곡 ‘올 얼롱 더 워치타워’를 부르는 순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무대의 그가 겹쳐 보였다.

무대는 소박하면서도 따스했다. 큰 공연장의 필수품처럼 여겨지는 대형 스크린도 없었고 화려한 조명도 없었다. 자줏빛 커튼을 배경으로 백열전구처럼 따스한 느낌을 주는 노란 조명만이 은은하게 무대를 비추었다. 기타를 치며 첫 두 곡을 부른 밥 딜런은 피아노 앞으로 옮겨 앉았다. 그리고는 또 말 없이 노래와 연주를 이어갔다. 음악가로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음유시인답게 그는 시를 읊조리듯 노래했다. 가사 내용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왠지 시적인 운율이 느껴지는 듯했다.

밥 딜런이 예전에 공연을 하는 모습. 그는 이번 내한공연에서 사진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소니뮤직 제공
밥 딜런이 예전에 공연을 하는 모습. 그는 이번 내한공연에서 사진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소니뮤직 제공
한 시간 반 정도 지났을 무렵,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피아노 앞에만 붙어있던 밥 딜런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무대 가운데로 나왔다. 로커처럼 스탠딩 마이크를 삐딱하게 기울여 잡고선 익숙한 멜로디의 노래를 불렀다. 이브 몽땅이 부른 샹송 ’고엽’의 영어 버전 ‘오텀 리브스’의 선율은 이날 무대에서 가장 명징했다. 관객들은 유독 박수를 크게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후 세 곡을 더 부르더니 역시 아무 말 없이 무대 뒤로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앙코르를 갈구하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에 화답한 건 우아한 바이올린의 선율이었다. 바이올린 전주 뒤로 “하우 매니 로즈~”로 시작하는 노래가 이어졌다. 밥 딜런의 최대 히트곡 ‘블로잉 인 더 윈드’였다. 1963년 처음 발표된 이래 얼마나 많이 불려졌는지는 바람만이 알고 있을 이 노래. 이날 불린 노래는 아름답고 우아한 버전의 또 다른 ‘블로잉 인 더 윈드’였다. 나온 지 반세기도 더 된 노래는 2018년에도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앞서 밥 딜런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실은 늘 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를 잘 모른다. 밥 딜런을 따라잡았다고 여기는 그 순간, 그는 또 다시 몇 걸음 더 나아간다. 토드 헤인즈 감독이 밥 딜런을 모티브 삼아 만든 영화 <아임 낫 데어> 제목처럼 “이봐, 난 거기 없다고” 하고 중얼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를 77살 거장의 내한공연 막이 내려지는 순간, 그 중얼거림이 환청처럼 들렸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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