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판화 연작 전시장의 모습. 샤갈 만년 시에 얽힌 자신의 공상과 열정을 풀어낸 석판화 연작들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던 연작이다.
‘우리가 알았던 샤갈과 달라요!’
관객들의 소감은 비슷했다. 그들이 본 샤갈의 판화 속엔 흑백톤의 세밀한 선으로 찍힌 동물과 서민, 영웅, 신들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 군상은 기묘한 행색과 동작으로 뒤얽혀 우화와 성화로 구성된 판화 100여점의 이미지를 이루며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그 앞에 선 관객들은 눈을 크게 뜨고 보기보다는 읽으려 했다. ‘사랑의 예술가’ ‘색채의 대가’라고 흔히 일컬어온 러시아 출신의 거장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은 판화들의 성찬을 통해 그 내면세계를 펼쳐보였다. 연인이나 가족 관객들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대가를 재발견하는 감동에 젖어들었다.
샤갈이 1930~50년대 작업한 성서 석판화 연작들 가운데 하나인 ‘여호수아와 패배한 왕들’. 인물 묘사를 위해 섬세하게 그려나간 석판화 특유의 여러 잔선들이 작가 심중의 예민한 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다.
‘마르크 샤갈 특별전-영혼의 정원’ 전시회에 많은 어린이들이 찾아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엠(M)컨템포러리 제공
<한겨레> 창간 30돌을 기념해 엠(M)콘템포러리와 함께 마련한 ‘마르크 샤갈 특별전-영혼의 정원’은 지난 4월말 개막한 지 3달을 넘긴 현재 관객 8만명을 넘기며 순조로운 흥행가도를 밟고 있다. 6월 잠시 주춤했으나 7월 들어 방학·휴가철을 맞아 젊은 층과 학생, 가족 관객들이 대거 몰리면서 평일 하루 입장객이 1000명을 넘길 정도로 붐빈다. 샤갈 작품으로는 역대 최대규모인 260여점이 나온 이번 전시는 눈에 띄는 대형작품들은 드물지만, 평생 떠돌이로 유랑했던 작가의 인생을 반영한 수채, 유화 소품과 판화 연작 등 다채로운 작업들이 많아 샤갈의 새로운 면모를 알 수 있었다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관객이 전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고 재방문율이 높다는 게 특징이라고 기획진은 귀띔했다. 애초 이달 18일 마칠 예정이었으나 관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주최 쪽은 9월2일까지 전시기간을 연장했다.
‘마르크 샤갈 특별전-영혼의 정원’ 전시회에 많은 어린이들이 찾아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엠(M)컨템포러리 제공
출품작의 절반 이상은 국내 처음 소개된 <성서> <라퐁텐우화집> 등의 판화 삽화 연작들이 차지한다. 각 작품마다 풍성한 이야기 소재와 샤갈의 인간적인 내면세계가 담겨 있다. 특히 1930년대 프랑스 화랑업자 볼라르의 주문을 받아 50년대까지 작업한 <라퐁텐우화집>의 연작들은 단연 발군이다. 깊은 흑백 화면 속에서 무수히 그은 잔선으로 묘사한 동물과 인간군상은 기괴하고도 신비롭다. 러시아 전통 우화에 심취해 1910년대부터 삽화 작업에 남다른 공을 들였던 샤갈은 <라퐁텐우화집> 외에도 50년대 성서 연작과 30년대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문인 앙드레 말로와 공동작업한 <대지에서> 연작, 50~60년대의 <시> 연작 등 삽화용 석판·동판화를 통해 평화와 사랑을 갈구했던 영적 지향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아이들과 함께 전시장에 온 교사 최상선(43)씨는 “익숙한 우화들을 색다른 필선으로 그린 샤갈의 그림들은 아이들과 충분히 교감할 수 있어서 보는 재미가 컸다. 성서 판화도 성서를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만의 표현을 했다는 느낌이 다가와 감동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샤갈의 세계를 깊숙이 살펴보는 ‘큐레이터 토크’로 전시의 묘미를 즐길 수도 있다. 매주 수요일 10시30분부터 열리는데, 전시장 내부 엠 라운지에서 샤갈의 작업시기와 작품주제,·소재·작업기법 등에 대해 큐레이터와 대화한 뒤 설명을 들으며 전시장을 둘러보게 된다. 입장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02) 3451-8199, 3451-8186~7.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