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호 작 ‘The Great Chapbook II’
노상호(32) 작가는 요즘 청년미술판에서 ‘뜨는 작가’ 가운데 한명이다. 2014년 이래로 인스타그램이나 구글 등에 올라온 온라인 이미지들을 매일같이 수집해 드로잉 작품으로 만든 뒤 다양한 방식으로 배포하는 작업방식을 개발해왔다. 밴드 혁오의 앨범 재킷 이미지도 이런 스타일로 제작해 주목받았다. 온라인 이미지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모아 드로잉하고 채색한 뒤 조각조각 떼어 파는 작업들은 2015년 10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청년작가 장터 ‘굿-즈’에서 도드라진 판매고를 올렸다.
청년작가들의 신생공간과 대안공간, 미술관 연합전 등에서 활동하던 그가 최근 국내 주요 상업화랑인 아라리오에서 갤러리 전속작가로서 전시판을 벌였다. 지난 24일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뮤지엄인 스페이스(옛 공간사옥)의 지하전시실에서 시작한 개인전 ‘더 그레이트 챕북(The Great Chapbook) II’이다.
아라리오 뮤지엄의 지하 전시장(옛 공간소극장)에 내걸린 노상호 작가의 작업들. 온라인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을 드로잉한 뒤 채색해 만든 대형 걸개그림과 옷걸이에 붙여 내건 이미지조각들이 보인다.
옛 공간소극장 터인 지하 전시장에 들어가면 한가운데 내걸린 3m길이의 대형 걸개그림 4폭이 나타난다. 걸개그림 양쪽 벽면에는 이미지 조각 400여점을 옷걸이에 죽 내걸었다. 옷걸이 위쪽 벽면과 쪽계단을 올라간 다른 골방에는 무려 1000점이 넘는 액자가 붙어있다. 모두 에스엔에스(SNS) 등에서 수집한 사람, 물건, 사건, 음식 등 세상의 잡다한 이미지들이다. 그러모은 이미지들 위에 얇은 먹지를 대고 화면을 재편집한 뒤 일기쓰듯 수시로 드로잉들을 만들어 대형 회화나 입간판, 천 등 다양한 매체로 확장해 퍼뜨리는 작업을 전시장에 가져온 것이다. 얄팍한 싸구려 대량 출판물을 뜻하는 영단어 ‘챕북’을 제목으로 쓴 것도 이런 작업틀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그림에 어떤 텍스트나 의미도 붙이지 않고 관객들의 취향, 시선의 끌림에 따라 각자 의미를 두고 보길 권한다. 1980~90년대 시위 현장에 나갔던 걸개그림이 잡탕 이미지를 담은 도가니가 되고, 옷걸이에 걸린 빨랫감이나 서류처럼 이미지 자체가 물건처럼 널려있는 모습은 마구잡이로 이미지를 소비하는 작금의 시각문화 세태를 은유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원래 세상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꾼이 되고자 했다는 작가는 이제 이미지 생산자에서 전파자로 위상을 바꿔가며 새로운 작가상을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에 대해 미술계와 시장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내년 2월10일까지. (02)736-57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아라리오뮤지엄인 스페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