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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직설과 은유로 시대의 화두를 풀다

등록 2018-10-08 18:02수정 2018-10-08 20:27

학고재 이종구, 윤석남 신작전

이종구 작가
세월호→촛불혁명→남북정상회담
화해·평화의 시대적 흐름 담아
현장의 격정 등 역사적 기록 강조

윤석남 작가
공재 윤두서 자화상 보고 ‘충격’
치뜬 눈매의 자화상 연작
여성주의 대표작가의 정체성 탐구


광화문 촛불 시위 당시 현장 참여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린 이종구 작가의 대작 <광장-시민>(2017)의 일부분. 작가 또한 시위대의 일부로 화폭 오른쪽에 나온다.
광화문 촛불 시위 당시 현장 참여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린 이종구 작가의 대작 <광장-시민>(2017)의 일부분. 작가 또한 시위대의 일부로 화폭 오른쪽에 나온다.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세월호 침몰과 촛불혁명, 정권교체,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며 벌어진 한국 사회의 대격변과 ‘미투운동’으로 불거진 여성인권 여성성 담론들은 미술가들에게도 지나칠 수 없는 표현의 과제들이다. 국내 리얼리즘 미술의 대표 작가들인 이종구(64)씨와 윤석남(79)씨가 최근 신작들을 내놓으며 이에 얽힌 고민과 모색을 풀어냈다. 지난달부터 서울 소격동 학고재화랑에 나란히 차려진 두 대가의 개인전은 ‘직설’과 ‘은유’의 상이한 방식으로 시대와 자아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윤석남 작가가 신작인 채색 자화상 그림 2점 앞에 서서 웃고있다. 이 채색 자화상 그림들은 책가도와 자화상, 이매창의 나푸판 그림 등을 뒷 배경으로 두고 정면을 응시하는 노작가의 당당한 자태를 보여준다.
윤석남 작가가 신작인 채색 자화상 그림 2점 앞에 서서 웃고있다. 이 채색 자화상 그림들은 책가도와 자화상, 이매창의 나푸판 그림 등을 뒷 배경으로 두고 정면을 응시하는 노작가의 당당한 자태를 보여준다.

직설처럼 쏟아낸 사회변혁의 서사 백두산 기슭을 올라가는 남북정상, 촛불광장의 사람들과 팻말, 세월호의 해맑은 아이들이 전시장을 뒤덮었다. 학고재 본관에 내걸린 이종구 작가의 신작전시(21일까지)는 작가의 말대로 지난 몇년간 한국사회에 일어난 ‘일상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사건’과 변화들을 크게 세가지의 단적인 이미지들로 압축한 작업들이다. 세월호사건에서 시작해 광화문 광장의 촛불혁명을 거쳐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진 화해·평화의 시대적 흐름을, 이를 대표하는 사건들의 시공간적 현장을 되살린 서사적 구도로 보여주는 셈이다. 이씨는 80년대부터 극사실적인 필치로 농민들의 피폐한 삶을 그려온 농민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는 농촌그림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촛불혁명, 남북정상회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현장의 격정과 감정들을 담은 시국화, 군상화들이 주로 내걸렸다. 가족과 함께 촛불시위 현장에 10여차례 참석한 감흥을 작가가 등장하는 가족화와 촛불 대열을 점의 흐름으로 묘사한 대작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근방의 임하도에서 아이들이 촛불광장에 나타났다는 상상을 재현한 일련의 세월호 연작 등은 ‘현장성을 살려낸 역사적 기록’이라는 일관된 작가의 원칙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전시서문에서 “어떤 미학적 완결성보다 시대의 서사와 내용을 더 중시하고 강조한 측면이 크다”고 밝혀놓았지만, 촛불광장의 정권퇴진 손팻말들을 크게 확대하거나 군상화에 콜라주하고, 백두대간을 압축한 풍경 위에 4·27회담 남북정상들의 이미지를 합성한 직설적 이미지들은 회화적 본령에 걸맞는 방식이었는지에 대한 물음을 떠올리게도 한다.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광화문 촛불현장에 찾아온 모습을 상상해 담은 이종구 작가의 <세월-아이들 광화문에 오다 1>(2017)의 일부분.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광화문 촛불현장에 찾아온 모습을 상상해 담은 이종구 작가의 <세월-아이들 광화문에 오다 1>(2017)의 일부분.
자화상의 강렬한 카리스마 신관의 1층과 지하층에 차려진 윤석남 작가의 신작전(14일까지)에서 가장 강렬하게 시선을 내리 누르는 것은 처음 내보인 여러 점의 자화상들이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필선으로 산발한 머리카락을 흘러내리게 하고 치켜뜬 눈매로 정면을 노려보는 여러 자화상들은 공재 윤두서의 기운 가득한 국보 자화상을 떠올리게 한다.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연필 드로잉을 바탕으로 수없이 고쳐서 붓으로 완성한 이 역작은 여전히 활력과 당당함이 넘치는 노작가의 내공과 에너지를 절감하게 한다. 실제로 작가는 수년전 18세기 화가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전시회서 보고 충격을 받아 자신의 얼굴을 그려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하며 그렸다고 한다. 3년전 서울시립미술관의 대규모 회고전을 비롯한 그간의 전시에서 자신의 어머니나 역사 속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담은 그림과 설치작업들을 선보였던데 비하면 좀더 원숙하고 깊어진 자기 성찰을 보여준다. 미투 운동 등 여성주의 진영의 최근 현안을 다룬 작품들을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여성주의 미술의 대표작가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솔직한 탐구의 흔적을 내보일 뿐 아니라 노령임에도 프로 작가로서의 조형 감각과 구성력을 더욱 심도깊게 구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민화, 채색화 기법의 적극적인 도입과 채색 자화상에 책가도와 자신의 자화상 소품들을 배경으로 포치해 절묘한 다중 구성을 시도한 부분 등에서 작가의 도드라진 내공을 느끼게 된다. (02)720-1524~6.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윤석남 작가의 자화상. 종이에 연필로 먼저 드로잉한 뒤 여러번 초지에 본을 뜨고 다시 한지를 올려 붓으로 옮겼다. 이번 개인전에 처음 나온 작품이다.
윤석남 작가의 자화상. 종이에 연필로 먼저 드로잉한 뒤 여러번 초지에 본을 뜨고 다시 한지를 올려 붓으로 옮겼다. 이번 개인전에 처음 나온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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