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룬 파로키의 회고전에 나온 대표작 <노동의 싱글숏>의 한 장면. 전시공간 곳곳에 늘어뜨려진 스크린에 세계 16개 도시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노동 현장을 담은 영상들이 명멸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삶과 노동의 의미를 직시하게 하는 작품이다.
많은 ‘덕후’들이 빠져든 컴퓨터게임이 어떻게 국가대표 미술관의 전시실에 들어왔을까.
요사이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지하 6전시실은 게임방과 다를 바 없다. ‘발광체’처럼 빛내며 입력된 이미지들을 쏟아내는 게임 이미지들이 네개의 대형 프로젝션 스크린에 명멸한다. 영상들은 왠지 불길하고 불편하다. 전사나 카우보이가 갑자기 총을 난사하거나 추격전을 벌이고., 벽이나 보이지 않는 경계에 부딪혀 제자리 걸음을 하는 사람, 길거리에서 청년이 행인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몸을 밀치며 괴롭히기를 되풀이하는 게임 영상들이다. 직접 게임에 참여할 수는 없다. 하지만, 푹신한 방석에 앉아 스크린 영상을 계속 올려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된다. 영상과 함께 낭랑한 영어 음성으로 흘러나오는 텍스트가 예사롭지 않다. ‘게임 속 세상은 평면이다. 그리스 시대 생각한 지구의 모습 같다’ ‘이곳에서 존재하려면 특별한 기능이 있어야 한다’ ‘영상 속의 주인공은 배울 부모가 없다’ 등등…
21세기 디지털가상 공간 게임의 냉혹한 매뉴얼을 낯설게 일러주는 이 작업의 작가는 독일의 미디어아트 거장인 하룬 파로키(1944~2014)다. 3년전부터 영화·미디어아트의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재구성해 기획전시를 벌여온 미술관 쪽이 올해 선정한 초대작가다. 게임영상들은 지난달부터 차린 파로키의 한국 첫 회고전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일부분으로 <평행>연작이란 이름이 붙었다.
전시제목이 암시하듯 파로키는 글로벌시대 우리 삶을 덮고있는 이미지의 작동방식과 소외된 노동의 실체를 독특한 영상 몽타주 방식으로 탐구했다. 베를린 영화아카데미를 나와 평생 독립영화와 미디어아트 작업에 몰두했던 작가는 전세계의 전쟁, 노동 현장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전혀 다른 맥락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주된 작업방식으로 삼았다. 기승전결의 시나리오로 구성된 기존 다큐나 영화의 서사를 거부하고,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처럼 수많은 이미지들의 짜깁기와 재해석을 통해 우리시대를 규정하는 시각 질서의 본질을 밝히려 했다. 옛적 기록필름부터 영화, 동영상, 게임물에 이르기까지 영상들의 파편들을 낯설게 엮어 이미지 시대의 실체를 드러내려했던 파로키의 작품 세계는 2000년대 이래 국내외 영상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 전시에서는 게임 영상과 더불어 90년대 이후 그가 끈질기게 천착해온 세계 각 도시의 노동현장에 대한 몽타주 작업들을 함께 볼 수 있다. 특히 7전시장을 천장에서 내려온 16개의 스크린들로 가득 채운 채 상영하는 <노동의 싱글 숏>(2011-17) 다채널 영상은 파로키와 부인 안체 에만이 2011년부터 시작한 워크샵 프로젝트로, 세계 16개 도시의 다기한 노동현장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요리를 하거나, 기계로 무언가를 찍어내고, 예술가의 초상을 그리거나, 범법자를 잡는 치안 활동까지 세부적인 노동의 면면을 투영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도시 속에서 타인의 노동을 유심히 보지 않는다. 작가는 이 영상 속에서 반복되는 타인들의 노동의 세부를 포착하면서 우리 삶을 떠받치고 유지시켜주는 노동의 일상성을 서정적인 느낌까지 안겨주는 짜깁기의 미학으로 풀어내고 있다. 스크린의 미로 속을 방황하는 느낌을 받으며 감상하는 여러 노동행위들의 단면은 자연스럽게 삶과 노동 자체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7전시실 깊숙한 곳에 놓인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과 이 전시장 입구 벽에 별도 프로젝션 영상들로 붙은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은 또다른 그의 역작으로 19세기말부터 최근까지 전세계 각 도시 직장에서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영상들을 각각 모은 것이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이나 1936년 만든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등에 찍힌 노동자들 무리의 모습들은 21세기 노동자 무리들의 영상과 엮이며 시공을 초월한 삶과 노동의 지속성을 일러준다.
파로키의 작업들은 첨단 영상기술을 상상력에 끌어들여 전세계적 소통의 예술을 주창한 백남준의 작업들과 흥미롭게 비교된다. 충돌하거나 이질적인 영상 이미지들의 창조적인 조합을 통해 지금 이시대의 정치적 문제, 노동현실의 문제를 새롭게 숙고하는 정치적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는 21세기 비디오아트의 새 돌파구를 연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내년 4월 7일까지. (02)3701-95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2006년 작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의 일부분. 1890년대 프랑스 리옹의 공장문을 나서는 당시 노동자들의 행렬이다. 뤼미에르 형제가 찍은 옛 동영상 일부를 근대, 현대 영화 속 노동자들의 퇴근 장면들과 함께 엮으며 노동자의 역사적 존재성을 되돌아본 수작이다.
하룬 파로키의 2014년작 <평행 2>의 한 장면. 사진처럼 정교해진 터 게임의 이미지 속성과 얼개를 뜯어본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