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손숙. 나인스토리 제공
“배우생활 50여년 동안 쉬지 않고 작품을 했으니 연극만 한 200편 한 것 같아요. 언젠가 배우 박중훈이 저에게 ‘선생님은 (여전히) 현역이시잖아요’ 그러더라고.(웃음) 다른 재주가 없어 연기만 했을 뿐인데 작품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죠.”
연극 <장수상회> <사랑별곡>, 드라마 <나의 아저씨> <나인룸> <뷰티인사이드>, 영화 <꽃손> <챔피언>…. 연극배우 손숙(74)의 올해 출연작품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그는 혼자서 운전대를 잡고 촬영장소와 극장을 찾아다닌다. “연극 연습실이 가장 편안하다”는 그는 오는 6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시어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로 올해를 마무리한다. 강풀의 동명웹툰이 원작으로, 드라마와 영화로도 만들어진 작품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만난 손숙은 나이가 무색한 연기활동에 대해 “1년에 연극 딱 두 편 정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출연 제안이 오면 거절을 못한다”며 웃었다. ‘연극계 대모’가 다작을 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작품 제안이 오면 ‘이게 마지막 작품일까’ 생각하며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연극은 거절을 못해요. 영화는 출연료나 분량 상관없이 의미 있는 작품이면 해왔고, 드라마도 잘 안하다 요새는 시간이 되면 해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용돈벌이 해 연극하는 아이들 밥 사 먹이는 게 즐거움이에요.(웃음)”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손숙은 폐지를 줍는 송씨할머니 역을 맡아 우유배달 할아버지 김만석 역의 이순재와 호흡을 맞춘다. “처음엔 노년의 사랑을 그린 지난 작품과 비슷할 것 같아 출연을 망설였어요. 원작이나 드라마, 영화도 안 봤는데 대본 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연달아 같이 작품을 해온 이순재 선생님도 편하고요.”
1964년 연극 <상복을 입은 엘렉트라>로 데뷔해 <밤으로의 긴 여로> <침향> 등 수많은 작품을 무대에서 선보였지만 그의 대표작은 역시 연극 <어머니>다. 1999년 2월 초연된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을 받았고, 20년 출연제의를 받아 화제가 됐다. 그해 5월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됐는데 임명 이틀 뒤 예정된 러시아 초청 공연을 했다가 기업들로부터 2만달러 ‘격려금’을 받은 것이 문제돼 임명된 지 32일만에 물러났다. 영광과 시련을 함께 준 <어머니>지만 그는 매년 이 작품으로 무대에 섰는데 올해엔 선보이지 못했다. ‘미투’ 폭로가 나온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작품이기 때문이다. “내게 아주 의미있는 작품이어서 내년이면 20주년이니까 잘 마무리하고 후배에게 물려줄 생각이었는데 속상하죠.” 그는 ‘미투’나 ‘블랙리스트’ 사태, 페미니즘 열풍 등 근래 연극계를 흔든 사건과 관련해 단호하게 말했다. “문화예술계가 침체돼있는데 어정쩡하게 문제를 처리해서 그런 것 같아요. 시간만 끌지 말고 빨리 해결을 봐야죠. 공연계에서도 연극은 앞서가는 분야인만큼 앞으로도 다양성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모든 질문마다 연극과 연극인들에 대한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은퇴시점을 물었다. 활자중독증일만큼 글을 읽는 걸 좋아하는데 몇 년전부터 안경을 쓰고도 대본 두 페이지를 읽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예전에 박정자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배우가 무대에 오르면서 아프다고 하는 건 예의도 아니고 프로도 아니다’라고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따로 은퇴 선언 같은 건 안할 거에요. 대사를 못 외우면 자연스럽게 그만둘 수밖에 없겠지만 죽을 때까지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대사를 안 주고 돌아앉아있으라고 해도 할거에요. 그것도 못하면 객석에라도 앉아있으려고요.”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나인스토리 제공